조선일보 2020.05.30. 03:18
1949년 9월 중국 정치협상회의가 초대 국가주석을 뽑을 때 모두가 마오쩌둥의 만장일치를 점쳤다. 그런데 576명 중 반대 1표가 나왔다. 당황해하는 선거관리위원들에게 마오가 "반대는 반대일 뿐"이라며 결과 발표를 지시했다. 당시 당 안팎에선 마오 본인이 '겸양'의 의미로 반대표를 던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한참 뒤 이 반대자는 옌징대 교수로 확인됐다. 이 교수는 이후 누명을 쓰고 쫓겨났고 문화대혁명 때 옥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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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 인구의 나라가 이렇게 일방통행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소름을 돋게 한다. 이미 우리에게도 이 일방통행이 밀어닥치고 있다. 경제·군사력 뒤에 감춰진 일당 독재의 민낯이다. 세계는 이 본질을 잘 알기 때문에 중국을 경계하며 '글로벌 리더'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한국 정부에만 "중국과 운명을 같이하겠다" "중국몽을 꾸고 싶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
임민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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