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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51]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바람아님 2014. 4. 16. 15:11

(출처-조선일보 2012.03.05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1866년 오늘 영국의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말에서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휴얼은 내게 각별한 사람이다. 
내가 7년 전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져 이제는 거의 일반용어처럼 널리 쓰이고 있는 '통섭(統攝)'의 영어 단어인 'consilience'를 
처음으로 고안해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일을 무척 즐겼다고 한다. 
'예술가(artist)'를 본떠 '과학자(scientist)'와 '물리학자(physicist)'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물리학자 패러데이(Michael Faraday)에게 '양극(anode)'과 '음극(cathod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통섭의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학자에 걸맞게 휴얼은 전형적인 통섭형 인재였다. 
케임브리지 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시를 써서 총장으로부터 금메달을 받았으며, 광물학 전공으로 시작한 오랜 교수 생활을 통해 철학, 물리학, 수학에서 과학사와 신학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를 섭렵했다. 
그는 consilience(統攝)를 강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작은 지류들이 한데 모여 큰 강을 이루듯이, 
서로 다른 학문 분야의 지식과 이론이 한데 모여 결국 하나의 거대한 통합 이론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8년 'Consilience'를 출간한 하버드 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학문 간의 넘나듦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다가 
이미 잊힌 휴얼의 조어를 발굴해 사용했다. 그러나 윌슨은 단어만 빌렸을 뿐 휴얼의 다분히 전일적이고 지나치게 귀납적인 
개념은 취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환원주의적 통섭(統攝)을 채택했다. 
하지만 그의 책을 번역한 나는 휴얼과 윌슨의 접근법을 모두 아우르는 호상적 통섭(統攝)을 선호한다.

통섭
(統攝)으로 엮인 우리 셋에게는 적지 않은 공통점이 있다. 학문적 오지랖이 넓은 점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윌슨 교수 역시 
신조어 제작을 매우 즐긴다. 사회생물학(sociobiology), 생물다양성(biodiversity), 생명 사랑(biophilia) 등이 다 그가 만든 말이다.
그런가 하면 문학에서 출발한 휴얼과 나와 달리 윌슨 교수는 몇년 전부터 드디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첫 소설 'Anthill'이 곧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단다.

♣ 바로잡습니다
▲6일자 A34면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 중 "그(휴얼)는 '예술가(artist)'를 본떠 '과학자(scientist)'와 
  '물리학자(physicist)'라는 용어를 만들었고"에서 'physicist'는 휴얼이 처음 만든 것이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