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12. 14. 00:40
[아무튼, 주말]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1948년 5·14 단전 사태와
전력 자립을 위한 사투
태평양전쟁 막바지 식민지 조선의 생필품 공급은 매우 열악했다. 식량이 부족해 미곡의 공출?배급제가 실시되었고, 석유가 부족해 대체재인 송근유(松根油) 제조를 위해 소나무 뿌리 채취에 열을 올렸다. 의복, 신발 등 기본적인 소비재 공급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딱 하나, ‘전기’만큼은 차고 넘쳤다.
닛치쓰(日窒)주식회사가 ‘조선질소비료 흥남공장’에서 사용할 전력을 얻기 위해 동양 최대 규모의 토목 공사를 벌인 끝에 1929년 1호기를 시작으로 1932년 4호기까지 준공한 부전강수력발전소는 발전력이 20만kW에 달했다. 당시 조선 전체 발전력의 4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해방과 분단은 남한에는 ‘대재앙’이었다. 해방 당시 북한의 발전력은 152만kW(88.5%)였지만 남한은 20만kW(11.5%)에 불과했다.....38선 통행 규제 이후 남북 교역은 대부분 단절되었지만,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한 소련은 남한으로의 송전을 굳이 끊지 않았다.....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5.10 총선거가 남한 단독으로 치러진 이후, 북한은 ‘5월 14일 정오’를 기해 일방적으로 송전을 중단했다.
단전 이후 미군정과 신생 대한민국 정부는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발전량을 끌어올렸지만 전력 부족은 피할 수 없었다. 부족한 전기 때문에 공장 휴업이 속출했고, 수돗물 공급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구역을 나누어 전기를 돌아가며 공급하는 윤번제 배전까지 실시해야 했다..... 제한 송전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64년에야 해제되었다. 그 후로도 예비 전력 부족, 석유 파동 등으로 주기적으로 반복된 제한 송전은 1978년 58.7kW 고리원자력 1호기가 준공되면서 간신히 극복되었다.
https://v.daum.net/v/20241214004019653
北이 남측 전기 끊자… 급파된 美 발전선이 암흑천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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