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2013년)
오랜 시간 지리산 숲길을 걷다 보니 처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별히 눈에 띈 것은 군데군데 쓰러진 나무들이었다. 수명을 다한 지 오래된 나무들은 하얗게 빛이 바래 있었다. 그런데 그 마른 나무 아래에서 작은 새싹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죽은 나무는 거름이 돼 어린 잎을 키우고 있었다. 숲은 그렇게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들이 조화를 이뤄 풍성해져 왔다.
인간 세상도 그렇다. 나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희생과 노고가 나의 현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저 사진 속 나무처럼 빛을 잃은 누군가가 있기에 세상이 더 푸른 것이 아닌가.
신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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