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0.18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유난히 긴 턱, 두툼한 입술, 좁은 어깨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골반, 얄팍한 가슴과 축 처진 뱃살을 가진 한 남자가
정원에 앉아 가족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그는 이집트 제18왕조의 10대 파라오였던 아크나톤이다.
틀에 박힌 듯 이상적 양식을 추구했던 기존의 파라오 조상(彫像)들과는 전혀 다른 이 부조는 '아마르나 시대' 미술의
현실적인 특성을 잘 보여준다.
아크나톤의 원래 이름은 아멘호테프 4세였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다신교를 일소하고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아크나톤의 원래 이름은 아멘호테프 4세였다. 하지만 그는 기존의 다신교를 일소하고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내세우면서 자신의 이름도 '아크나톤', 즉 '아톤을 위하는 자'로 바꿨다.
수도 또한 텔-엘-아마르나의 신도시로 옮겼기에, 흔히 그의 재위 시기를 '아마르나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 아크나톤과 그 가족, 기원전 1355년경, 석회석, 31.1×38.7㎝,
- 베를린 이집트 박물관 소장.
아크나톤과 왕비 네페르티티는 어린 세 딸들과 함께 생명의 힘을 발산하는 태양신 아톤의 상징, 일륜(日輪)의 비호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신성한 상징이 없다면, 엄마 몸에 꼭 붙은 두 아이들과 아이를 안고 뺨을 비비는 아빠의 모습은
여느 평범한 가족과 다를 것이 없다.
아크나톤의 파격적 개혁은 그의 사후 모두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그가 세운 도시와 신전들은 파괴되었다.
아크나톤의 파격적 개혁은 그의 사후 모두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그가 세운 도시와 신전들은 파괴되었다.
그 뒤를 이은 왕이 바로 투탕카멘이다. 2008년 DNA 조사에서 아크나톤이 투탕카멘의 아버지라고 밝혀졌다.
왕비 소생이 아니었던 투탕카멘은 아크나톤과 네페르티티의 삼녀(三女)이자 그의 배 다른 누이인 앙케세나멘과 결혼했지만,
10대에 급사(急死)했다. 이 작품 속, 천진한 세 아이들 중에 비극의 주인공 앙케세나멘이 있을지 모른다. 과연 누굴까.
<아크나톤과 그 가족 - 큰이미지>
'文學,藝術 > 아트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35] 이집트의 셀케트 여신 (0) | 2014.11.02 |
---|---|
[그림이 있는 아침] 소싸움에 담긴 뜻 (0) | 2014.11.01 |
[그림이 있는 아침] 화가의 발칙한 의도 (0) | 2014.10.30 |
[그림이 있는 아침]자연의 품에 안기다 (0) | 2014.10.29 |
[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34] 무카의 포스터 (0) | 2014.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