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한·일 간 '정상회담 없는 정상화'도 고민해야

바람아님 2014. 12. 16. 10:19

[출처 ; 중앙일보 2014-12-16일자]

 

    

이원덕/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12월14일에 치러진 일본 총선 결과 자민당은 475석 중 291석을 얻었고 공명당과 의석수를 합치면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상회하는 326석이나 획득해 제3기 아베 정권의 출범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아베 총리는 이변이 없는 한 2018년까지 안정적으로 장기 집권할 수 있는 티켓을 거머쥐게 되었다. 애당초 중의원 해산 결정 자체가 명분과 논리가 턱없이 부족함에도 아베 총리가 정권 연장을 위해 절묘한 타이밍을 계산해 내린 정략적 산물이었다. 따라서 자민당의 승리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이 승리를 거둔 이유는 야당의 지리멸렬 상황과 대안 세력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원전 재가동, 집단적 자위권 행사, 역사 수정주의에 반발하는 유권자가 절반에 가까움에도 야당들은 반 아베 표를 담을 그릇을 만들지 못했다. 민주당은 사분오열되어 수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지 못해 73석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바야흐로 일본 정치는 ‘열도 총보수화’의 길을 열었다. 자민당이 독주하는 ‘1강다약’ 구도의 정당 체제와 ‘대통령급’의 권력을 행사하는 아베 총리 1인 지배 체제로 가닥이 잡혔다.

 이번 총선에선 원전 재가동, 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역사 인식 등 대립 전선이 뚜렷하게 부상하지 못한 채 아베노믹스, 소비세 증세 연기 등의 경제 문제가 유일한 쟁점이 되었다. 52%라는 낮은 투표율 속에서 젊은 유권자는 과반수가 기권했고, 반대로 점차 비율이 커지고 있는 고령자 층이 대거 자민당에 표를 몰아준 것도 승리에 일조했다. 절대득표율로는 20%도 안 되는 지지를 받았음에도 자민당이 300석 가까운 의석을 싹쓸이하는 선거제도 또한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새로 출범하게 될 제3기 아베 내각은 ‘전후 체제의 탈피’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 개정을 위한 정지작업을 가속화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작동시키기 위한 법제화에도 힘을 기울일 것이다. 다만 평화헌법의 개정에 당장 시동을 걸지는 못할 것이다. 개헌 발의를 위해서는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해 개헌세력의 의석을 3분의 2 이상 획득해야 하고 국민투표에서도 과반수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종전 70주년을 맞이함에 따라 역사 수정주의 행보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8월 15일 ‘아베 담화’ 발표로 아베 정치는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고노담화, 무라야마 담화를 전면 수정하진 않더라도 퇴행적인 역사인식이 반영된 아베 담화를 선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심각하게 악화된 한·일 관계가 제3기 아베 정권 출범을 계기로 개선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은 지난 50년의 한·일 관계를 성찰하고 성숙한 협력관계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호기다. 하지만 지금의 한·일 관계는 그야말로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복합골절’ 상황이다. 아베 정치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헌법, 안전보장, 독도, 위안부, 야스쿠니 참배 등 어느 것 하나 우리 희망대로 일본을 변화시키기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아베 노선과 정책이 주는 거북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일 외교와 ‘일본 다루기’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대일 외교는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대외전략의 큰 틀 속에 위치시켜 치밀하고도 정교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평화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일본 변수’의 활용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일본 내의 혐한 분위기가 점차 보통의 국민에게 확산되고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반 토막 난 현실을 감안할 때 보편적 규범이나 인권·민주주의 등의 외교자산을 활용한 공공 외교부터 더욱 활발하게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대일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서는 한·일 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해 따질 건 따지고 협력할 건 협력하는 정공법으로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년 중에 한·중·일 간의 외상회담에 이어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일 간 정상의 대면이 가능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이를 양국관계 개선의 ‘입구론’적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관계개선의 과정에서 ‘출구론’적으로 풀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때 일본은 ‘납치 문제’ 해결을 대북한 외교의 전제 조건으로 삼다가 자신의 대북외교가 ‘납치’ 상황에 빠지게 되는 역설을 경험한 바 있다.

 당장 한·일 간에 정상회담이 어렵다면 ‘정상회담 없는 정상화’를 꾀하는 것도 차선의 타개책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비정상 외교채널을 풀가동해 대화와 협력의 길을 모색하고 아베 정권과 일본 국민을 달리 접근함과 동시에 정책 이슈에 관해서도 역사인식 문제와 경제, 안보, 문화 영역을 나누어서 다루는 ‘분리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에는 어떻게든 경색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할 수 있는 계기를 포착하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