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찬킹청의 중국정치 뚫어보기⑩ 시진핑의 공자부활 노력 성공할까?

바람아님 2014. 12. 19. 22:00

(출처-조선일보 2014.03.12 찬킹청, 홍콩 신보 총편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당 총서기로 올라선 이후 과거의 중국 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28일에는 베이징의 한 만두가게에 홀연히 나타나 평범한 손님과 같이 줄을 서 21위안어치의 
만두와 요리를 주문하는 소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얼마 전인 2월 25일에는 베이징 시내의 한 가정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는데, 마침 그 날 베이징의 공기 오염 수치가 
상당히 높아 ‘국민과 함께 호흡한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가정 방문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더 나아가 시진핑이 베이징의 심각한 대기 오염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문제를 직시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또 다른 일화도 있다. 작년 4월 홍콩의 친(親) 중국계 신문인 대공보(大公報)에서 시진핑 주석이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보도했다.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 역시 이 보도 내용을 사실로 확인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공보가 
허위 기사임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진핑이 택시를 탄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적 이유로 
중국 정부가 매체의 정정을 요구한 것이라 주장한다. 한 나라의 주석이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는 것이 당의 기율을 위반하는 
사항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며 정치적 영향력이 큰 시진핑을 위해 언론의 신뢰도를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2014년 2월 25일 중국 베이징에 극심한 스모그가 발생한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전통 거리인 난뤄구샹을 깜짝 방문했다.
2014년 2월 25일 중국 베이징에 극심한 스모그가 발생한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전통 거리인 난뤄구샹을 깜짝 방문했다.
어찌 되었든 이러한 언행으로 인해 시진핑 주석은 과거의 중국 지도자들과는 달리 친서민적이고 사소한 격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비교적 개방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과 군의 기강을 바로잡고 부정부패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단호한 면모를 보이며 부정부패로 인해 잃어버린 민심을 되찾고자 했다.

또한 지난달 24일 사회 가치관 재정립에 관하여 진행한 중앙정치국 집단학습에서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수립 및 
중화민족 전통 미덕 발양’이라는 주제를 내걸었다. 즉, 시진핑은 자신의 시대를 열어 새로운 사회의 가치관을 수립함으로써 
중국 국민들에게 모두가 함께 믿고 따를 수 있는 가치관과 도덕규범을 심어주려 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중국 국민뿐 아니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관해 전 세계의 지지를 얻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는 국가의 번영과 
안정에 관련된 전대미문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시진핑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 대업을 완성하려 하고 있다.

집단 학습이 있었던 2월 24일, 공산당이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의 주요 개념으로 제시한 24글자를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이 핵심 가치관은 세 가지 측면으로 나뉘는데, 
우선 첫 번째는 부강, 민주, 문명, 화해(和諧) 등 국가적 가치관이다. 
두 번째는 자유, 평등, 공정, 법치의 사회적 가치관이며, 
마지막으로는 애국, 경업(敬業·자신의 일을 존중하고 열심히 하는 것), 성신(誠信), 우선(友善)의 개인적 가치관이다.

이 24글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주요 강령으로 삼았던 ‘계급투쟁’이나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혹은 ‘선부론(先富論·부자가 먼저 부자가 되는 것을 인정해 가난한 사람이 
따라 배우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장쩌민(江澤民)의 ‘삼개대표(三個代表·공산당이 자본가와 지식인, 인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이론)’ 및 후진타오(胡錦濤)의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환경오염을 줄여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며 
경제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소득계층 간의 불균형, 도시와 농촌 간의 불균형, 동·서 지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자)’과는 
굉장히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정치적 색채가 옅어지고 인간미가 더해졌으며, 그리고 어쩌면 그 속뜻은 다를지 몰라도 얼핏 보기에는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가치관에 매우 근접해 있어 모두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렇게 제시한 24자의 가치관을 어떻게 실천하게 할 것인가?

시진핑은 중앙정치국의 집단학습에서 그 답을 제시했다. 바로 중화민족의 전통문화 및 도덕적 정수를 흡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통문화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도덕적 가치관을 어떻게 추려낼 것인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전통에서 또 어떠한 문화적 요소를 취해야 하는가?

소련의 프롤레타리아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강령으로 삼아 일으킨 혁명을 통해 중국 공산당이 수립되었다. 
그 당시 ‘진보적’입네 하는 지식인과 학생, 중국공산당 혁명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은 모두 옛 문화와 옛 예절 교육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의 전통문화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1949년 마오쩌둥은 정권을 손에 넣은 뒤 수차례 정치운동을 벌였고 
그 시발점은 문화와 연극에 대한 비판이었다.

문화대혁명의 열기는 ‘해서파관(海瑞罷官)’이라는 연극에서 시작되어 린퍄오(林彪)와 공자의 사상을 공격하는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털끝만큼도 관련 없던 린퍄오와 공자를 한데 묶어 비판했던 
이 운동은 린퍄오와 공자를 빌어 전통문화를 비판하고 마오쩌둥 사상의 정확성과 정당성을 드높이기 위한 쇼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제 와서 중국 공산당은 이를 번복하고자 하는데 과연 해낼 수 있을 것인가?

시진핑은 공자의 묘를 방문하는 등 유교문화 수립에 힘쓰며 공자를 전통문화 재수립의 구심점으로 추대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시진핑이 중국 헌법에 명시된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현재 정치에 필요한 유교를 관련지을지 아직 수많은 의문점이 
존재한다.

한(漢)나라부터 중국 사람들은 제자백가의 사상을 배척하고 유교만을 중시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금과옥조로 여겨왔다. 
또한 이를 통해 중국적 세계 질서인 천조예치(天朝禮治·하늘 아래 있는 세상은 하나의 왕조이고 그곳은 예로써 다스려진다)를
형성했다. 하지만 과거 200년간 이 ‘예(禮)’는 중국에서 그림자 조차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중화문화로의 회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