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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 허브는 극동의 이스탄불 … 박근혜 대통령이면 가능”

바람아님 2015. 1. 6. 23:50
[중앙선데이 2015-1-4 일자]

두만강 다국적 도시 제안한 김석철 국가건축정책위원장

두만강 다국적 도시’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김석철 교수.
-왜 두만강인가.
 “천혜의 지정학적 요충지다. 두만강 하구는 한국·미국·일본·동남아 등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유라시아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다. 반대로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유럽연합(EU) 등 유라시아 국가들이 태평양으로 나오는 출구다. 한마디로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대륙과 바다를 잇는 게이트다.
 철로의 집합지라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라시아의 중심 철도인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만주횡단철도(TMR)의 동쪽 종착역이 모두 두만강역이다. 여기에 동해를 따라 청진-원산으로 내려가는 북한 철도도 연결돼 있다.”

 -과거에도 두만강은 중요했나.
 “두만강의 중요성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조선 초 두만강 유역에 6진을 설치한 김종서 장군은 ‘이 땅을 개척하는 것만큼 시급한 일은 없다’고 했다. 1905년 러일전쟁 발발 직전 러시아 총사령관은 ‘조선을 잃으면 아시아를 잃는다’며 연해주로 군대를 보냈다.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처럼 전략적 요충지다.”

 -두만강 다국적 도시는 어떻게 만드나.
 “두만강역을 중심으로 북한의 나진·선봉, 중국의 팡촨(防川), 러시아의 하산이 접하고 있다. 세 나라가 100만 평씩의 토지를 제공해 총 300만 평의 원형 성채 도시를 만드는 거다. 고대 바그다드, 시안(西安)과 견줄 만한 세계적 다국적 도시를 부활시키는 셈이다. 3국의 원형 성채 도시는 관광 산업과 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한다. 도시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중국의 팡촨공원은 관광지로서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자본을 투자하고, 에너지·농식품·첨단 산업단지를 조성하며, 남·북·중·일·러 등 5개국이 자유롭게 무역 거래를 할 수 있는 국제경제특구를 만드는 안이다.”

 -두만강역 주변에 국제도시를 만들면 다 되는가.
 “거기서 끝나면 반쪽짜리다. 철로만 연결돼 내륙을 이어줄 뿐 바다 쪽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하고 발견한 건 두만강 하류 굴포리다. 두만강은 사행천(蛇行川), 즉 뱀처럼 생겨서 큰 배가 못 들어온다. 또한 굴포리 역시 역사유적지인 데다 항만조건이 어려워 아직 항구로 개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20m 수심의 굴포 앞바다에 플로팅 아일랜드(floating island)를 만들어 그 자체가 대량의 천연가스와 곡류를 저장하는 방파제가 되면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항만이 될 수 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현대의 조선 기술은 우리의 상상력을 실현시킬 만큼 발달해 있다. 수심이 20m 정도 되면 20만t급 컨테이너선 20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대규모 국제항만을 건설해 낼 수 있다. 게다가 굴포리 부근 만포·동번포·서번포 일대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석호(바닷물이 섞인 해안호수)로 이뤄져 운하를 뚫을 수 있다. 결국 원형 성채도시와 굴포항을 만들고, 두 곳을 운하로 연결하는 게 두만강 프로젝트의 완성형이다. 아시아의 베네치아로 명명해도 손색없을 만큼 아름다운 외형이 될 것이다.”

건축가라고 하기엔 김석철 위원장의 관심사는 폭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인터뷰 도중 그는 국제경제, 물리학, 세계사 등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눈가엔 장난기가 가득했다. 김춘식 기자
 -중국과 러시아의 구미를 당길 요소는 무엇인가.
 “유라시아의 인구는 46억 명에 이르고, 국내총생산(GDP)은 28조 달러에 이른다. 두만강 하류와 접해 있는 중국 동북 3성은 옥수수 등 식량이 풍부하고, 중국 철강 생산의 80%를 차지한다. 하지만 동해로 직접 연결되는 항구가 없어 ‘항문이 막혀 있다’고들 한다. 또한 러시아 시베리아는 천연가스의 보고다. 가스에서 운송비는 생산 원가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기에 유럽보다는 한국 등에 파는 게 훨씬 유리하다. 결국 두만강 다국적 도시를 통해 중국은 철강·농식품 산업 기지와 수출 기지를 얻고, 러시아는 동북아 에너지 수급망을 완성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002년 이후 10년간 암수술만 네 번, 방사선 치료를 66차례 받았으나 현재는 완치된 상태다.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눈빛만큼은 어린 아이처럼 초롱초롱했다. “1969년 여의도 개발 설계안을 내놓았을 때는 정부 관료 중에 나를 총살시켜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지금도 두만강 국제도시라면 미쳤다고 하는 사람 숱할 겁니다.” 그가 두만강 프로젝트에 열정을 쏟은 건 10년이 넘었다. “베네치아에서 7년간 머물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탐구한 것 모두 두만강 도시 때문입니다.”

 -북한이 적극적일까.
 “북한은 그동안 경제특구나 개발구를 20여 개 지정했지만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하지만 다국적 도시는 외화 유입과 일자리 창출, 대외 신인도 상승, 나진·선봉과의 연계 개발 등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과거와 다른 접근방식으로 북한 경제가 대도약의 계기를 맞을 수 있으며, 중국·러시아가 함께해 남한과의 단독적인 경제교류보다 거부감이 덜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러시아의 이해가 직접적으로 걸려 있기에 북한이 함부로 깽판을 칠 수도 없을 것이다. 사실 북한으로선 극동의 이스탄불을 거저 얻는 셈 아닌가. 전향적으로 나올 것으로 본다.”

 -우리나라는 어떤 역할인가.
 “일종의 프로듀서라고 할까. 두만강 다국적 도시는 러시아의 에너지, 중국의 자원·농산품, 북한의 노동력, 일본의 자본과 기술, 한국의 기획력의 총합체다. 우리가 설계안을 갖고 각국을 설득하며 실질적으로 일을 주도해 나가야 한다. 돌이켜보면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도 장기 침체 중이지 않나. 경제적·사회적 돌파구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 불안은 더욱 쌓일 테고, 이석기와 같은 부류의 움직임도 사그라들지 않을 듯 보인다. 두만강 프로젝트가 북한보다 오히려 한국에 전환점을 주리라 기대한다.”

 -자칫 북한의 군사력만 증강시키는 건 아닐까.
 “그런 냉전주의적 사고로 북한과 어떤 협력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북한의 개발과 개방을 유도하는 건 결국 통일을 위해서다. 현재 남북한의 경제규모 격차는 40배나 벌어져 있다. 이런 상태론 통일할 수도 없으며, 통일해서도 안 된다. 준비 없이 통일했다간 북한 퍼주기에 급급해 남북한 모두 망할지 모른다. 경제적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동·서독도 25년이 지나도록 통일비용을 지출하느라 큰 출혈을 감수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 상황을 일정 정도 이상 올려 놓아야 통일 이후에도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런 연유로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맡았나.
 “그렇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기에 두만강 프로젝트를 제안할 엄두를 낸 거다. 향후 20년간 외교와 통일 분야만큼은 박 대통령보다 더 뛰어난 지도자가 나오기 어렵다는 게 내 판단이다. 대북 관계에서 과거처럼 무조건 퍼주기도 아니며, 반대로 냉각돼 있지만 않고 적절히 냉온탕을 오가는 것도 진일보한 거 아닌가. 외교에서 일본 아베 신조 총리를 제외한 각국 정상과 이토록 허물없이 지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청와대에서의 퍼스트레이디 경험이 큰 학습 효과를 내는 게 아닌가 싶다. 박 대통령이기에 중국·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게다가 신년 초에 북한 김정은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나. 절호의 기회다.”

 -박 대통령을 만났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할 기회가 없어 편지를 보냈다. 두만강 프로젝트가 실행되면 그 공을 몽땅 내가 가져가는 게 아닌지 걱정하는 분들이 있는 거 같다. 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다. 본격화되면 절대 관여하지 않을 거다. 한반도는 분단된 상태에선 불완전 국가다. 통일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선 돌연변이 같은 혁명적 사건이 필요하다. 현실 운운하며 그저 계산기 두드리기 바쁠 때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몸으로 부딪치며 과감히 던질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단과 용기다.”



김석철 1943년 함경남도 안변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와 서울 예술의전당,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등 당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설계했다. 도시설계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겨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을 비롯해 중국 취푸(曲阜) 신도시, 베이징 경제특구, 쿠웨이트 자하라 신도시 등을 디자인했다


최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