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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한말 애국계몽운동(1908년 근대식 교육기관 동진학교 창설때 사용) 쓰인 태극기, 문화재로

바람아님 2015. 2. 18. 11:44
[조선일보 2015-2-16 일자]

1890년대 제작 '선교장 태극기' 1950년대 사라졌다 작년 발견
무명 천 잇대 재봉틀로 박음질… 민간서 만든 것 중 가장 오래돼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에 사용된 강릉 선교장(船橋莊·중요민속자료 제5호) 태극기가 등록문화재가 된다. 지난 10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위원회(위원장 김영식)는 강릉의 사대부 가옥인 선교장 내부 수리 도중 발견된 태극기에 대해 "문화재로 등록한다"고 의결했다. 등록문화재란 멸실 위기에 처한 근대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2001년 도입된 제도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강릉 선교장 소장 태극기(이하 선교장 태극기)'의 제작 시기를 189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현존 최고(最古) 태극기로 밝혀진 '데니 태극기(등록문화재 제382호)'에 이어 둘째로 오래된 태극기인 셈이다. 고종이 구한말 외교고문을 지낸 미국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는 189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실물이 남아있는 태극기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져 왔다.


	강릉 선교장 태극기(위). 괘의 위치가 지금과 좌우가 다르다. 아래는 1908년 동진학교 개교식 기념사진으로 배경에 보이는 태극기 두 개 중 왼쪽 빨간 점선 안의 태극기가 문화재가 된다. 오른쪽 태극기는 광복 후 김구에게 선물했다고 전하며 이후 행방은 알 수 없다.
강릉 선교장 태극기(위). 괘의 위치가 지금과 좌우가 다르다. 아래는 1908년 동진학교 개교식 기념사진으로 배경에 보이는 태극기 두 개 중 왼쪽 빨간 점선 안의 태극기가 문화재가 된다. 오른쪽 태극기는 광복 후 김구에게 선물했다고 전하며 이후 행방은 알 수 없다. /선교장 제공
선교장 태극기는 지난해 11월 선교장 내부를 수리하면서 발견됐다. 이강백 선교장 관장은 "1891~1897년 선교장에서 직접 재봉틀로 제작한 태극기"라며 "1950년대 이후 행방을 알 수 없다가 이번에 찾은 것"이라고 했다.

선교장 태극기는 무명 두 폭을 이음질해 가로 153cm, 세로 145㎝ 크기로 잘라낸 다음 테두리를 재봉틀로 두 줄 박음질했다. 바탕에 태극 문양과 4괘의 모양대로 오려낸 후 크기에 맞게 메우고 다시 재봉틀로 정교하게 두 줄 박음질해 완성했다. 이 관장은 "당시 태극기 2점을 제작했는데 다른 하나는 광복 후 김구 선생에게 선물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기증했다고 하는데 이후 행방은 모른다"고 했다.

'선교장 태극기'는 구한말 애국계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관장의 증조부인 이근우(1877~1938)가 1908년 강릉에 설립한 동진(東進)학교 개교식에 이 태극기 2점이 내걸린 것이다. 동진학교는 망국의 위기를 맞아 근대 지식 보급과 청소년 인재 양성을 위해 문을 연 근대식 학교였다. 지리와 역사, 산수, 일본어도 가르쳤지만, 국어와 조선 역사 교육을 특히 강조했다. '선교장 태극기' 현장 조사를 맡은 송명호 중부대 교수 등은 "구한말 태극기의 형태나 제작 기법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