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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70] 필로폰 靑 행정관

조선일보 2022. 07. 13. 03:03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이 모르핀 중독자에게 찾아온다. 단지 한 시간 혹은 두 시간만 모르핀을 끊어 봐라. 공기가 희박하고 숨 쉬는 게 불가능하다. 몸 안에 굶주리지 않은 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것을 설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인간이 아니다. 시체가 움직이고 우울해하고 고통에 신음한다. 그는 모르핀 이외에 어떤 것도 원치 않고 상상하지도 않는다. - 미하일 불가코프 ‘모르핀’ 중에서. 오래전 팔이 부러져 수술한 적 있다. 죽을 듯 아프다가도 진통제를 맞으면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맨정신으로는 상상해본 적 없는 쾌감을 잠깐 경험했던 것도 같다. 내게는 낯설어서 두려운 것이었지만, 그런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어떤 사람들은 약물에 의..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69] 영화와 드라마, 욕설은 이제 그만

조선일보 2022. 07. 06. 03:03 조너스는 경험한 것을 친구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언덕과 눈을 보여주지 않고 어떻게 썰매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높이, 바람 그리고 깃털 같고 마술 같은 차가움을 느껴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언덕과 눈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지난 십여 년 동안 여기 아이들 모두가 언어의 정확한 사용법을 훈련받았지만 어제 조너스가 경험한 햇볕의 따스함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단어를 사용할 수 있겠는가. - 로이스 로리 ‘기억 전달자’ 중에서 공중파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내보내는 드라마와 영화 속 담배는 모자이크 처리 된다. 술이나 마약, 총기는 보여주지만 혈흔이나 문신, 살인 도구가 되는 칼도 뿌옇게 가려놓는다. 하지만 담배와 칼을 본다고 모든 시청자가 모방 욕구를 ..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오래 살고 싶다는, 밝힐 수 없는 바람

한겨레 2022. 07. 06. 18:35 환갑의 톰 크루즈가 날아다니는 과 대척점에서 최근 시선을 끈 다른 영화가 있다. 개봉 전이라 아직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일본 영화 다. 관련 기사를 보면,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일본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정부가 75살을 넘긴 이들에게 안락사를 권유하고 신청을 받아 이를 시행해준다는 이야기다. 비록 픽션이지만 섬뜩한 아이디어가 칸에서도 화제가 됐다는데 내가 진짜 섬뜩했던 것은 이런 설정이 아니라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영상광고에 등장해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서 너무나 만족스럽다”고 말하는 플랜75 선택자의 말이다. https://news.v.daum.net/v/20220706183505908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오래 살고 싶다는, 밝..

월북인지 아닌지 왜 중요하냐고? 개인의 진실 짓밟은 거짓 대의

조선일보 2022. 06. 29. 03:06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68] 우리 지도자들은 모두 항상 평화에 대해 열광적으로 떠들어대지만 나와 내 동료들은 그저 서로 눈짓을 할 뿐이다. 우리 지도자들은 교활하고 영리해서 남들을 능히 속일 것이다. 그들처럼 거짓말 기술에 통달해 있는 사람도 없으니까. 거짓이 없으면 삶도 없다. 우리는 항상 그저 대비할 뿐이다. 우리는 매일 정렬하고 정문을 향해 나아간다. 보조를 맞춰서. - 외된 폰 호르바트 ‘우리 시대의 아이’ 중에서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일, 더불어민주당이 ‘평화는 최고의 안보, 대화의 물꼬를 다시 틔우자’는 이상한 글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다. 부국강병이 최고의 안보이고 그 결과 평화가 있는 것 아닌가? 언제나 북한을 평화 제공자로..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67] 바보상자 TV와 똑똑이 스마트폰

조선일보 2022. 06. 22. 03:05 오웰은 누군가 서적을 금지시킬까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서적을 금지할 이유가 사라지고 사고를 무력화하는 테크놀로지를 떠받들 것을 두려워했다. ‘1984′에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해 통제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즐길 거리를 쏟아부어 사람들을 통제한다. 오웰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 봐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우리가 좋아서 집착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 봐 두려워했다. - 닐 포스트먼 ‘죽도록 즐기기’ 중에서 병사들이 24시간 휴대전화를 소지하는 방안을 국방부가 모색 중이다. 현재 군 복무 중이거나 곧 하게 될 당사자는 물론, 입대할 자식을 둔 부모라면 수시로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을 바라지 않을 리 없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휴대폰 사용으로..

[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66> 챈스 일병의 귀환] 전사자에 대한 예우, 인생에 대한 예의

이코노미조선 2022. 06. 20. 18:29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은 이라크에서 전사한 챈스 펠프스 일병을 운구하는 일에 자원한다. 전략 분석가로 일하며 가족과 행복한 일상을 살던 그는 전쟁터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을 장병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매일 새로 올라오는 전사자 명단을 확인하며 행여 아는 사람이 있을까 마음 졸이던 그의 눈길이 챈스의 이름에 머문다. 자신과 고향이 같은 챈스를 부모님 곁에 데려다주리라, 그는 마음먹는다. https://news.v.daum.net/v/20220620182941686 [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챈스 일병의 귀환] 전사자에 대한 예우, 인생에 대한 예의 [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챈스 일병의 귀환] 전사자에 대한 예우, 인생에 대한 예의 마이클 스트로블 ..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66] 민들레와 만들래

조선일보 2022. 06. 15. 03:02 그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 깃털이 반만 남은 공작이 점잔 빼며 잔디밭을 걸어 다니는 모습을 떠올렸다. 또는 그 얼빠진 자가수분 꽃, 민들레 같은 것을 떠올렸다. 민들레는 씨를 만드는 데 수분이 필요 없었다. 그 화려한 노란 꽃잎은 그저 시간 낭비, 허세, 가장일 뿐이었다. 생물학자들이 쓰는 용어가 뭐였더라. 무성생식. 민들레는 무성생식이었다. - 로알드 달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중에서 일부 여당 의원들이 ‘민들레’라는 모임을 조직했다. ‘민심을 들어 볼래’의 뜻이라고 한다. 순수 공부모임이라고도 하고 친윤(親尹) 세력의 결집이라는 말도 있다. 산적한 나랏일이 한둘이 아닐 텐데 따로 모임을 만들어 모일 필요는 무엇일까. 그 모임이 아니면 민심..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65] 전과자 수두룩한 국회

조선일보 2022. 06. 08. 03:01 앤더튼이 말했다. “프리크라임은 법을 어긴 적 없는 개인을 잡아들이는 것이네. 폭력행위를 저지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잡아들이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혐의가 있다고 주장하지. 반면, 그들은 영원히 무죄를 주장할 걸세.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그들은 실제로 무고한 셈이지. 우리 사회에는 이제 중범죄가 존재하지 않네. 대신 미래의 범죄자들로 가득한 격리 수용소가 생겼지.” - 필립 K. 딕 ‘마이너리티 리포트’ 중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의하려면 ‘성범죄 경력조회 동의서’와 ‘아동학대 관련범죄 전력조회 동의서’를 제출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법에 의해 사원을 채용할 때조차 신원조회를 할 수 없다지만, 언제부턴가 많은 곳에서 전과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