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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의 시네마 에세이 <71> 파이트 클럽] 지금 죽는다 치고, 뭘 하고 싶어?

이코노미조선 2022. 10. 17. 17:19 인간의 내면에는 제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조각들이 있다. 못나 보이는 나, 거절당한 나, 패배한 나의 일부는 조각가의 칼에 깎이고 잘려 나간 부스러기처럼 냉정히 버려지지 못한 채 우리 안에 남아 마음을 떠돈다. 세상에 내보인 아름답고 향기로운 자화상 뒤에 숨겨 놓은 후회와 불만, 결핍과 욕망을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부유물들은 뜻밖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서로 결합하고 부풀어서 우리를 점령한다. 영화는 입에 총을 물고 있는 남자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그를 협박하며 테일러 더든은 3분 뒤 열두 개의 빌딩이 폭파될 거라고 말한다. 남자는 극장에 앉아 있는 관객처럼 도시가 날아가는 장면을 속수무책 지켜봐야 한다. https://v.daum.net/v/2022..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83] 조종사와 기관사

조선일보 2022. 10. 12. 00:10 “이지도르, 저거 믿어요? 최면술 말이에요.” “나는 암시의 힘을 믿어요.” “암시라는 게 뭐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무슨 색깔이죠?” “흰색요.” “이 종이는 무슨 색깔이죠?” “흰색요.” “그럼 젖소는 뭘 마시죠?” “우유요….” 이지도르는 빙그레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이 참! 우유가 아니라 물이지. 좋아요. 내가 보기 좋게 당했군요.” 뤼크레스는 선선히 인정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뇌’ 중에서 전국 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은 작품이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에 나오는 증기기관차를 떠올리게 하는 데다 보리스 존슨과 도널드 트럼프의 관계를 풍자한 스티브 브라이트의 2019년 만평을 표절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

죽음 앞둔 아내의 첫사랑 찾는 여정…류승룡도 반한 명소는 [GO로케]

중앙일보 2022. 10. 11. 05:00 팔도유람 로드무비 ‘인생은 아름다워’ 주요 촬영지 죽음을 앞둔 아내의 첫사랑을 찾아 나서는 어느 부부의 여정. 류승룡.염정아 주연 ‘인생은 아름다워’는 그런 영화다. 얼핏 눈물샘만 자극하는 가족드라마일 것 같지만, 의외로 웃음 짓는 순간이 더 많다. 추억의 명곡이 영화 내내 흐르는 뮤지컬이자, 다채로운 풍경을 담은 로드무비여서다. 서울.목포.청주.부산 찍고 보길도까지, 세연(염정아)과 진봉(류승룡) 부부는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전국 방방곡곡을 쏘다닌다. 한 번쯤 가보고 싶을 만큼 멋진 장소, 추억의 관광지가 수두룩하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https://v.daum.net/v/20221011050033652 죽음 앞둔 아내의 첫사랑 찾는 여정..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82] 죽은 교육의 사회

조선일보 2022. 10. 5. 00:00 - “내가 교탁 위로 뛰어 올라왔을 때는 뭔가 중요한 까닭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나? 나는 여러분이 다른 각도에서 끊임없이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보면 세상은 달라 보이거든.” 몇몇 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생님의 행동에 놀라 멍청히 앞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좋다! 모두들 여기 올라와서 직접 느껴 보도록!” - N. H. 클라인바움 ‘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 죽여 버리겠다며 담임에게 목공용 양날 톱을 휘두른 초등학생, 젊은 여교사의 수업 시간에 상의를 벗거나 교단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들이댄 남자 중학생, 여선생의 치마 속을 들여다보겠다고 교탁 아래 카메라를 설치한 고등학생. ..

돈 보고 결혼하는데, 처남 약혼자에 끌려..그대로 결혼해도 될까요 [씨네프레소]

매일경제 2022. 10. 1. 19:03 *주의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씨네프레소-49] 영화 '매치 포인트' 독서 욕구는 있는데 시간이 부족할 때, 서점가에 진열된 책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인사이트를 얻어 갈 수 있다. 아무래도 출판계는 우리나라에서 제목을 제일 잘 짓는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당신은 누구인가?'란 책도 제목이 잘 뽑힌 서적 중 하나다.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지 않더라도 '남이 보지 않을 때 내가 하는 행동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본질에 가깝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https://v.daum.net/v/20221001190301369 돈 보고 결혼하는데, 처남 약혼자에 끌..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81] 황금 알을 낳는 권력

조선일보 2022. 9. 28. 03:04 “지구 최후의 만찬이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얇은 입술이 뒤틀렸다. 입에서 쓴맛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들이 계속해서 구매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이 달리 물건을 조달할 방법이 없으니 경쟁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떠날 작정이었다. 그들이 떠나면 더 이상 물건을 팔 수 없으리라. 이보다 더 좋은 시장은 없었다. 그곳이야말로 완벽한 시장이었고, 그들은 완벽한 고객이었다. - 필립 K. 딕 ‘독점 시장’ 중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 측근이 청와대와 맺은 친분을 내세워 마스크 생산 업체에서 거액 로비 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이 수사 중이다. 마스크 착용 강제가 국민 건강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전 국토를 황폐화시킨 탈원..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80] 2차 범죄를 부르는 법의 관대함

조선일보 2022. 9. 21. 03:06 “전기 충격을 몇 번 더 주면 토끼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굶어 죽습니다. 이것을 혐오 훈련이라고 합니다.” 금연 치료는 아주 간단했다. 한 번 담배를 피우면 아내가 그 ‘토끼의 방’에 들어간다. 두 번 피우면 모리슨 자신이 그 방에 들어간다. 세 번 피우면 둘이 함께 그 방에 들어간다. 네 번까지 피운다면, 그것은 상호 협조 관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간주하여, 좀 더 단호한 방법이 취해진다. - 스티븐 킹 ‘금연주식회사’ 중에서 신당역 역무원 살해범은 몇 년간 피해자를 괴롭혀온 스토커였다. 그러나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며 법원은 구속에 반대했다. 피해자에게 보복할 우려는 하지 않았다. 9년 징역을 구형받고도 스토커는 자유롭..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79] 왕이 없는 왕좌의 게임

조선일보 2022.09.14. 03:00 철왕좌를 본 적이 있나? 등을 따라 가시가 돋아 있고, 비틀린 강철 리본에, 들쭉날쭉한 장검과 단검 끝이 뒤엉켜 녹아 있는 그 의자를? 그건 편안한 의자가 아니라네. 아에리스는 어찌나 자주 베이는지 사람들이 피딱지 왕이라고 부를 정도였고, 잔혹 왕 마에고르는 그 의자에서 살해당했지. 그건 사람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의자가 아니야. 왜 내 형제들이 그 의자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을까 의아할 때도 많지. - 조지 R.R. 마틴 ‘얼음과 불의 노래’ 중에서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왕이었지만 그는 지난 70년간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한 넓은 영연방 왕국의 군주였다. 왕실 존폐 논란과 왕가의 다양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