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1407

[고현곤 칼럼] 육영수 여사가 생각나는 새해 아침

중앙일보 2024. 1. 2. 03:10 수정 2024. 1. 2. 03:30 한복 속옷을 기워 입을 정도로 검소 권력 누린다는 원성 살까 봐 늘 조심 조용히 봉사 선행, 온 국민 존경받아 육 여사 같은 영부인 또 볼 수 있을까 1968년 7월 3일 밤.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물난리가 났다. 잠원동 주민 300여 명이 신동초등학교에 긴급 대피해 있었다. 그때 한 사람이 폭우 속에 황토물 교정을 철벅철벅 걸어오고 있었다. “이 밤중에 누굴까?” 그는 교사 안으로 들어오며 머리를 감쌌던 흠뻑 젖은 수건을 벗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사님 아냐?” 누군가 놀라 소리쳤다. 육영수 여사는 “여러분 얼마나 고생 많으세요”라고 인사한 뒤 가져온 구호 물품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나룻배를 타고, 발목까지 빠..

학생 ‘운동 부족’ 94%...체력평가 확대한다

조선일보 2023. 12. 26. 21:42 수정 2023. 12. 27. 03:34 한국 학생들은 세계 꼴찌 수준으로 신체 활동을 적게 한다. 코로나 때 ‘집콕’을 하면서 체력도 떨어지고 비만도 늘었다. 이에 정부가 초등학교 5학년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던 체력평가를 초등3·4학년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초등 1·2학년 교육 과정에 ‘체육’ 과목을 별도로 분리하고, 방학 스포츠 캠프도 연다. 신체 활동을 늘려서 공부와 휴대전화에 매몰된 학생들의 체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26일 이런 내용의 ‘제3차 학교체육진흥 기본계획(2024~2028년)’을 발표했다. 학교스포츠클럽도 활성화한다. 중학교의 스포츠클럽 시간을 현재 3년간 102시간에서 136시간으로 30% 늘린다. 방학 기간에 참여할..

이중섭 그림에 "왜 다 벗었냐" 따진 초등생…나체 작품 교육법

중앙일보 2023. 12. 24. 05:00 수정 2023. 12. 24. 13:45 " 벌거벗은 여성들이 있는 그림을 보는데 불쾌했어요. 충격 받았어요. " 프랑스의 11~12세 일부 학생들이 지난 7일 르네상스 시대 화가 주세페 체사리(1568~1640년) 그림을 보고 이렇게 반응했다. 파리 외곽에 있는 자크-카르티에 학교의 한 교사는 이날 미술 감상 수업에서 체사리가 지난 1603년에 그린 '디아나와 악타이온'이란 그림을 보여줬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이 그림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사냥꾼 악타이온이 목욕하는 사냥의 여신 디아나(아르테미스)를 봤다가 사슴으로 변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중 디아나와 요정 등 여성 5명은 나체다. 나체가 나오는 예술작품에 관련된 수업 논란은 이..

[백영옥의 말과 글] [334] 소금꽃

조선일보 2023. 12. 23. 03:04 수정 2023. 12. 23. 05:37 택시에서 가수 진성의 ‘소금꽃’을 들었다. “눈물도 말라버린/ 가시밭 땀방울/ 서러움에 꽃이 된/ 아버지 등 뒤에 핀 하얀 소금꽃….” 문득 설악산을 오르며 본 한 남자가 떠올랐다. 체력이 약한 나는 작은 배낭을 하나 메고 헉헉대며 모퉁이에 앉아서 쉬고 있었는데 그때 앞을 가로지르는 구릿빛 피부의 남자가 보였다. 커다란 지게에 짊어진 음료수가 한가득인 그의 어깨에는 소금꽃이 눈처럼 하얗게 피어나고 있었다. 로마 시대 군인들은 월급으로 소금을 받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샐러리맨(salaryman)의 어원은 소금을 뜻하는 ‘sal’에서 왔는데 노동의 대가인 급여를 의미하는 라틴어 ‘salarium’에서 유래했다. 흥미로운..

[백영옥의 말과 글] [333] 행운을 모으는 법

조선일보 2023. 12. 16. 03:01 일본의 괴물 투수이며 타자인 ‘오타니 쇼헤이’가 다저스에 입단했다는 뉴스를 보았을 때, 나는 9000억이 넘는 그의 10년 연봉보다 “청소는 남이 떨어뜨린 운을 줍는 것!”이라고 정의한 그의 말이 먼저 떠올랐다. 쓰레기 줍기, 청소, 책 읽기, 인사하기는 그가 운을 모으려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운을 오직 좋은 소설 쓰기에 쏟아붓고 싶어 평생 로또를 사지 않는 작가를 알고 있다. 문득 세상이 아닌 자신의 언어로 단어를 새로 정의하고, 꾸준히 실천한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해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빨간 머리 앤이 한 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내일은 아직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은 하루”라는 말인데, 이 말을 떠올릴 때마다 폐허 위에서 “내일은 내일..

[노트북을 열며] 저성장보다 더 두려운 것

중앙일보 2023. 12. 14. 00:21 수정 2023. 12. 14. 00:22 “일본의 젊은 세대는 1980년대와 같은 경제 호황을 원하지 않습니다. 절반 이상은 차라리 지금이 낫다고 생각하죠.” 최근 일본의 한 대학교수에게 전해 들은 얘기다. 소위 MZ세대는 버블 경제(자산 가격 폭등)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겪으면서 고도성장의 후과를 더 두려워하게 됐다는 의미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본 노조의 최대 목표는 임금 인상이 아닌 고용 유지라고 한다. 내 월급이 오르는 것보다 또 다른 가족 구성원도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결과적으로 가계 소득을 늘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고용이 나빠지면 사회적으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범죄가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른 나라..

장욱진은 왜 까치를 많이 그렸을까 [고두현의 문화살롱]

한국경제 2023. 12. 13. 00:09 ■ 화가의 재발견 유화 730점 중 60%에 까치 등장 "누구요?" "난 까치 그리는 사람" 까치는 길조…그와 가족의 분신 마지막 작품에도 정성껏 반영 “뭐 하는 사람이오?” “까치 그리는 사람입니다.” 통도사 스님의 질문에 대한 화가 장욱진(1917~1990)의 답이다. 장욱진은 까치를 유난히 좋아했고 그림으로 많이 그렸다. 그가 남긴 유화 730여 점 중 440점에 까치가 등장한다. 전체의 60%가 넘는다. 초등학교 시절인 1925년부터 죽을 때까지 까치를 그렸으니 65년간이나 고락을 함께했다. 초등학교 때 그는 미술책에 그려진 까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몸통을 온통 새까맣게 칠하고 눈만 하얗게 칠한 까치를 그렸다. 이 그림은 일본인 미술 교사의 ..

[곽정식의 삶의 향기] 덕수궁 돌담길의 흰 비둘기

중앙일보 2023. 12. 12. 00:31 100년 전 조선을 포위한 열강들 파란의 한국 근현대사 떠올려 평화 메시지는 언제 날아올까 근세사의 격랑이 휘몰아쳤던 이 길 곳곳에 스며있는 역사의 편린을 하나씩 쪼듯 비둘기들이 바닥을 향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의 비둘기는 나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많아도 행인들과 길 다툼을 벌이지 않는다. 행인들도 비둘기를 조심해가며 걷는다. 그날은 평화의 상징인 흰 비둘기도 눈에 띄었다. 그날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보았던 흰 비둘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다른 비둘기들은 고개를 앞쪽으로 끄덕이는데 그 비둘기만은 젖은 낙엽 위에서 끊임없이 뒤를 돌아다봐서다. 비둘기의 이 모습은 고난으로 점철된 우리 근대사를 한 번쯤 뒤돌아보라는 뜻이 아닌지. 불과 100여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