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1407

[신복룡의 신 영웅전] ‘귀신 잡는 해병’의 종군 여기자 히긴스

중앙일보 2023. 9. 28. 00:16 1950년 6월 27일 맥아더 사령관보다 먼저 도쿄에서 특별기가 떴다. 네 명의 종군 기자가 탔는데, 그 가운데 여자도 한 명 있었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마거릿 히긴스(1920∼1966)였다. 그는 미국 명문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당시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극동지국장 신분이었다. 홍콩에서 선박운송회사 직원으로 근무하는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히긴스를 동료들은 ‘핏속에 빙수가 흐르는 여자’라고 불렀다. 히긴스는 한국전쟁사에서 최초로 1951년 1월 『한국전쟁(War in Korea)』을 출간해 한국을 세계에 알리며 지원을 호소했다. 그 책으로 그해 퓰리처상을 받았고, AP통신은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아군이 한창 궁지에..

[함영준의 마음PT] ‘BTS’ 한국이 ‘자살률’ 최고, ‘출산율’ 최저인 진짜 이유

조선일보 2023. 9. 26. 05:50 #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힙(hip)한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 문화의 도시 파리에 한국 식당만 200개가 넘고, 푸대접받던 사범대 국어교육과가 ‘한국어 열풍’으로 해외에서 구직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단군 이래 최고로 융성해진 나라에서 자살률이 20년 넘게 OECD국가 중 최고이고 출산율은 최저인 이유는 무엇일까. 새삼 30년전 미국에 살 때 기억이 떠오른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 왕은 부하 장군을 전쟁터에 보내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첩으로 삼았다. 그로 인한 죄는 결국 자식들에게로 이어져 근친상간과 살인, 패륜, 아버지 다윗왕에 대한 반역과 쿠데타, 그리고 다시 아버지 면전 앞에서 자식이 살해되는 비극으로 절정..

[백영옥의 말과 글] [322] 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

조선일보 2023. 9. 23. 03:02 나는 꽤 오랫동안 주말에도 일했다. 쉬고 있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번아웃 단계에서 ‘죄책감 없이 쉬는 법’으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명상을 추천받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히려 불안이 더 밀려왔다. 그때부터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잘 쉬는 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은 친구에게 왜 샤워만 하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한 적이 있다. 비누질 도중에 물을 멈추고 뭔가 적을 수도 없는데 난감하다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취미가 설거지라고 밝힌 바 있다. 내 친구는 뜨개질을 할 때 충만해진다. 샤워, 설거지, 뜨개질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셋 다 규칙적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특히 이 셋은 이들의 직업과 연관성이..

[목요단상] 재수생 양산하는 대입제도, 희망이 있을까

강원도민일보 2023. 9. 21. 00:05 2024학년도 수능 접수 결과, 재수생을 포함한 n수생 비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년 전 정시 확대 이후 n수생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하던 터에 대통령이 수능 문항에까지 칼을 빼든 상황이라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의 정시 합격자 중 n수생 비율은 60%가 넘는다. 전국 의대의 경우 80%에 달한다. 위에 열거한 현상의 공통적 출발점은 바로 수능시험이다. 성적 상위권에 속하는 수많은 학생이 대학 간판을 바꾸거나 직업 안정성과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의대로 진로를 바꾸기 위해 재수를 택하는 것이다. 이 현상에 내포된 문제는 여럿이지만 세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의 학벌 집착과 의대 쏠림을 전혀 제..

진보 'PC주의' 역설…신동엽·싸이·화사도 당했다[허은아가 소리내다]

중앙일보 2023. 9. 20. 09:00)(허은아) 마광수 징역형 이후 진전 없어 올바름 추구, 표현의 자유 위협 국가 개입 최소화 원칙도 흔들 태초에 마광수가 있었다. 무려 30년 전인 1992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자신의 소설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에 해당한다며 강의 도중 경찰에 체포됐다. '야한' 소설을 창작했다는 이유로 대학교수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일대 사건이었다. 정치영역이 아닌 문화영역에서 표현의 자유가 큰 사회적 논란이 되었던 최초의 사례였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까지 왔을까.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서만큼 우리 사회는, 특히 우리 정치는 몇 발짝 내딛지 못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가 도입한 SNI 방식의 ’https 차단‘은 여전히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백영옥의 말과 글] [321] 공원과 벤치

조선일보 2023. 9. 16. 03:01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선택한 곳이 공원 근처였다. 내게 공원은 집의 확장이고 뒷마당이기 때문이다. 글이 안 풀리거나 지치면 공원 벤치에 앉아 산책하는 사람과 강아지를 관찰하는 게 취미인데, 1번부터 5번까지 좋아하는 벤치의 순위가 있을 정도다. 노을이 질 때 앉는 벤치, 강아지를 관찰하기 좋은 벤치, 넉넉한 할머니 품 같은 벤치가 따로 있다. 맨해튼의 설계자 ‘로버트 모지스’는 맨해튼 중심에 큰 공원을 짓지 않으면 향후 같은 크기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거라는 조언을 들었다......누구나 편히 쉴 수 있는 벤치가 ‘사회행복자본’이 되기 때문이다. 삶에서 누리는 정말 좋은 것들은 공짜이다. 하늘, 햇빛, 바람, 그리고 공원과 벤치. ht..

[백영옥의 말과 글] [320] 애정 없는 좋은 말

조선일보 2023. 9. 9. 03:03 대학생 때, 친구들과 광고 공모전을 준비한 적이 있다. 나는 카피라이터로 참여했는데 그때 팀의 회의 방식이 독특했다. 한 친구의 제안으로 아이디어 회의 때마다 누군가 한 사람은 계속 의견에 반대하는 역할을 맡았다. 회의 중 자기 의견에 딴지를 걸거나 비판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기 마련인데, 이를 방지하고, 우리 아이디어를 과대평가하다가 정작 본선에서 탈락하는 과오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우리 회의 방식이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전략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악마의 대변인’은 가톨릭에서 성인(聖人)을 추대할 때 후보의 결점이나 의심스러운 점을 지적하는 선의의 비판자를 말한다. 모두가 찬성할 때 합리적 반대 의견을 내고 비판적 대안을 제..

하루에 몇 번이나 '뒤센 미소'를 짓나요? [고두현의 문화살롱]

한국경제 2023. 9. 6. 00:12 ■ 웃음의 사회학 웃을 때 231개 근육 함께 움직여 호쾌한 웃음은 10분 운동 효과 입·눈까지 다 웃는 게 '뒤센 미소' 입만 웃는 '팬암 미소'는 가짜 고두현 시인 ‘웃음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노먼 커즌스는 웃음을 방탄조끼에 비유했다. 미국 ‘새터데이 리뷰’ 편집인으로 일하던 그는 52세에 ‘강직 척추염’이라는 불치병에 걸렸다. 류머티즘의 일종으로 염증 때문에 뼈와 근육이 점점 굳어지는 중증 질환이다. 완치율이 낮아 500명 중 1명이 치료될까 말까 할 정도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서 돌아눕는 것조차 힘들다. 어느 날, 그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 통증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웃음의 치유력에 눈을 뜬 그는 이후 약 15분 웃으면 2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