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1407

[백영옥의 말과 글] [307] 단절, 나 자신을 지키는 권력

조선일보 2023. 6. 10. 03:02 요즘 책 마감을 맞추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다. 덕분에 가끔 여행 대신 여행 유튜버를 구독하며 마음을 달랬다. 듣도 보도 못한 장소를 여행하는 그들의 자유가 부러웠다. 하지만 구독하는 유튜버들이 너무 늘자 선택 장애가 왔다. 결국 정말 좋아하는 채널 몇 개만 남기고 모두 정리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라 말할 정도로 많은 정보에 노출돼 있다....가장 큰 단점은 자신이 누리는 경험의 가치를 자꾸 폄훼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와 경쟁 속에서 우리는 종종 나와 타인을 비교하며 자신을 과하게 비하한다. 가정과 직장에서, 휴식 중에, 잠들기 직전까지도 휴대전화를 보는 행위는 만성적 시간 부족의 원인이 된다. ‘연결’이 디폴트 값이 된 시대에 ‘단절..

[백영옥의 말과 글] [306] 프로에 대하여

조선일보 2023. 6. 3. 03:03 10년 전, 자기 분야에서 가장 일 잘하는 남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인터뷰 말미에 삶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 질문을 던졌다. 흥미롭게도 거의 모든 사람 답이 ‘시간’이었다. 하루 24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사람에 따라서 시간의 결과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프로는 시간을 잘 경영하는 사람이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우아한 백조의 정신 사나운 발밑을 상상해보라.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발밑도 비슷하다.....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가로 살기 위해 처음 필요한 건 재능이고, 이후는 체력이라고 말했다. 고치고 고쳐서 더는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한 번 더 고치는 사람이 작..

[김대식의 미래 사피엔스] [30] 22세기를 위한 예술

조선일보 2023. 5. 30. 03:04 사진 기술 발명은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세상이 렌즈를 통해 필름에 담기고, 이렇게 필름과 종이에 남은 세상은 수십 년, 수백 년 보존이 가능하다. 나 혼자만 볼 수 있었던 세상을 모두가, 그리고 먼 훗날에도 볼 수 있게 되자 예술가들은 혼란에 빠진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정교하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역할 아니었나? 기계가 세상을 더 정확하고 영구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화가와 조각가는 왜 있어야 할까? 예술가는 대부분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외면하거나 거부한다. 하지만 예술의 역할은 기계보다 세상을 더 정교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었던 그들의 이름은 머지않아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반대로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진지..

[백영옥의 말과 글] [305] 챗GPT는 질문이다

조선일보 2023. 5. 27. 03:01 동료 작가와 챗GPT가 쓴 소설 이야기를 하다가 번역가 선배가 툭 던진 ‘침몰론’이 떠올랐다. 우리가 타이태닉 호의 악사들처럼 모두 가라앉는 중이라는 것이다. 챗GPT의 등장 이후 회계사, 변호사, 기자,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이 대체되거나 사라질 거라는 기사를 보며 7년 전,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의 충격이 데자뷔처럼 떠올랐다. 기계가 많은 것을 대체하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며 ‘핸드 메이드’라는 라벨이 붙은 제품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더 중요한 건 역설적으로 “무엇이 변하지 않는 것인가!”이다. 전자계산기의 등장 이후 사라진 건 ‘주판’이지 ‘수학’이 아니다. 형태는 변해도..

[돋을새김] 흰머리에 대하여

국민일보 2023. 5. 23. 04:09 기억하는 한 엄마는 언제나 염색을 했다. 때가 되면 거울 앞에서 가르마마다 독한 배합 염색제를 펴발랐다. 그러고 나서 며칠은 머리를 긁었다. 손톱 대신 손끝으로 살살, 벌게진 두피를 달래듯 문질렀다. 그 시절 엄마는 “염색은 환갑까지”라고 말했다. 기한은 일흔 살로, 다시 여든 살로 미뤄졌다. 엄마가 염색을 관둔 건 코로나19가 터진 뒤였다. 산책길에 만난 동네 할머니들 머리도 하얘지던 때였다. 엄마의 흰머리는 장점이 많았다. 두피색과 차이가 적어서 성긴 숱은 덜 도드라지고, 조명 켠 듯 안색도 밝아졌다. 하지만 예쁘다고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안 믿었다. 백발이 ‘나는 노인입니다’ 광고판 같다나. 어떤 이의 흰머리는 권위와 명성을, 다른 이의 흰머리는 허약함과 ..

[백영옥의 말과 글] [304] ‘좋은’ 사람을 구분하는 법

조선일보 2023. 5. 20. 03:03 언젠가 북 콘서트에서 어떤 사람과 결혼하면 좋을지를 묻는 분을 만났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사람마다 ‘좋음’의 기준이 다르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힘들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거창한 말보다 그 사람의 작은 행동을 본다고 말한다. 나쁜 행동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질 때라야 좋은 사람에 대한 안목이 생긴다. 오래전에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인생에 정말 중요한 건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배웠던 것 같다. https://v.daum.net/v/20230520030310932 [백영옥의 말과 글] [304] ‘좋은’ 사람을 구분하는 법 [백영옥의 말과 글]..

“백년해로 꿈꿨는데...” 아내와 사별한 6070 남성에게 닥친 현실은

조선일보 2023. 5. 14. 07:00 수정 2023. 5. 14. 08:00 독거사별남성과 기혼남성의 신체·정신건강 비교 “부부가 함께 있을 때부터 홀로서기 연습해야” [행복한 노후 탐구] “30년 동안 함께 한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잔소리 들을까 봐 그동안 못 갔던 동창들 술자리부터 가야겠다. 도쿄 가부키쵸 캬바쿠라(고급 술집)의 아미씨 문자도 이젠 지우지 않아도 되겠지. 밤에도 당당히 아미씨한테 LINE(메신저)할 수 있겠네. 연애도 실컷 해서 김정은처럼 기쁨조도 만들어 봐야지... 혼자 살게 되면 이렇게 자유를 만끽할 줄 알았는데 내 현실은 정반대다.” 아내와 사별한 후의 심정을 담은 이 영상에서 66세 남성은 “나보다 먼저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남자는 수명이 짧으니까) 내가 먼저 죽..

[백영옥의 말과 글] [303] 적당한 침묵과 최고의 대화

조선일보 2023. 5. 13. 03:02 정말 중요한 건 상대가 나의 어떤 말을 ‘기억’하느냐다. 말없이 친구의 말을 그저 듣기만 했을 뿐인데 대화가 끝날 무렵 친구에게 “오늘 조언 고마워. 정말 도움이 됐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저 친구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가 울 때 손을 잡은 게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이런 대화에서 침묵은 제3의 청자다. 듣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면 결국 상대도 침묵에 깃든 내 마음을 듣게 된다. 잘 듣는 것이 잘 말하는 것이다. https://v.daum.net/v/20230513030252384 [백영옥의 말과 글] [303] 적당한 침묵과 최고의 대화 [백영옥의 말과 글] [303] 적당한 침묵과 최고의 대화 대화만 하면 피곤한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