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世說新語] [479] 산산가애 (珊珊可愛)

바람아님 2018. 8. 10. 09:26
조선일보 2018.08.09.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산산(珊珊)은 형용사다. 원래는 허리에 패옥을 차고 사람이 걸을 때 가볍게 부딪쳐 나는 소리를 말한다. 사뿐사뿐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형용하는 표현으로도 자주 쓴다. 당나라 원진(元稹)은 '비파가(琵琶歌)'에서 "한 연주 막 끝나고 또 한 차례 연주하니, 고요한 밤 구슬 주렴 바람에 쟁글쟁글(一彈旣罷又一彈, 珠幢夜靜風珊珊)"이라고 했다. 미인이 주렴 안쪽에서 비파를 연주한다. 그녀가 뜯는 비파의 울림이 고요한 밤중에 구슬주렴을 진동시켜 가볍고 은은한 소리를 낸다는 뜻이다.


송나라 때 신기질(辛棄疾)의 '임강선(臨江仙)'도 있다. "남쪽 연못 밤비가 새 기와를 울리니, 삼경이라 소낙비 쟁글쟁글 들리네(夜雨南塘新瓦響, 三更急雨珊珊)." 새로 얹은 기왓장을 빗방울이 때리고, 그것이 튕겨 오르면서 내는 해맑고 여린 공명음을 산산으로 포착했다.


명나라 귀유광(歸有光)의 대표작 '항척헌지(項脊軒志)'는 애잔한 글이다. 항척헌은 고향집의 서실 이름이다. 한 사람이 겨우 거처할 만한 공간인데, 백 년이나 묵어 비만 오면 천장에서 빗물이 새고, 진흙이 떨어졌다. 북향으로 앉으면 해를 받지 못해, 오후면 이미 어두워지는 그런 방이었다.


이 방을 물려받은 그는 수리부터 했다. 지붕을 새로 이어 비가 새지 않게 하고, 창을 네 개나 두어 환하게 했다. 뜨락엔 꽃나무를 심고 난간을 둘러 눈을 기쁘게 했다. 책을 시렁 가득 꽂아두고, 누워 휘파람 불다가 고요히 앉아 책을 읽었다. 온갖 자연의 소리가 들려왔다. 정원은 적막해서 작은 새가 이따금 와서 모이를 쪼고 갔다.


나는 특히 이 대목이 좋다. "보름밤 밝은 달이 담장에 반쯤 걸리면 계수나무 그림자가 어른댄다. 바람이 흔들어 그림자가 움직이면 쟁글쟁글 그 소리가 사랑스러웠다(三五之夜, 明月半墻, 桂影斑駁, 風移影動, 珊珊可愛)."

귀유광이 이곳을 특별히 아꼈던 것은 어머니와 일찍 세상을 뜬 아내와의 추억이 깃들어서다. '항척헌지'는 이렇게 끝난다. "마당에는 비파나무가 있는데, 내 아내가 세상을 뜬 해에 손수 심은 것이다. 지금은 이미 높이 자라 일산(日傘)만 하다." 마음이 애틋해진다.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