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世說新語] [481] 다자필무 (多者必無)

바람아님 2018. 8. 24. 08:50
조선일보 2018.08.23. 03:1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바쁜 일상 속에서도 평온을 꿈꾼다. 일에 파묻혀 살아도 단출한 생활을 그리워한다. 명나라 팽여양(彭汝讓)의 '목궤용담(木几冗談)'을 읽었다.

"책상 앞에서 창을 반쯤 여니, 고상한 흥취와 한가로운 생각에 천지는 어찌 이다지도 아득한가? 맑은 새벽에 단정히 일어나서는 대낮에는 베개를 높이 베고 자니, 마음속이 어찌 이렇듯이 깨끗한가(半窗一几, 遠興閑思, 天地何其寥闊也. 淸晨端起, 亭午高眠, 胸襟何其洗滌也)?" 새벽 창을 여니 청신한 기운이 밀려든다. 생각은 끝없고 천지는 가없다. 낮에는 잠깐 눈을 붙여 원기를 충전한다. 마음속에 찌꺼기가 하나도 없다.


"몹시 조급한 사람은 반드시 침착하고 굳센 식견이 없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은 대개 우뚝한 견해가 없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틀림없이 강개한 절개가 없다. 말이 많은 사람은 늘상 실다운 마음이 없다. 용력이 많은 사람은 대부분 문학의 아취가 없다(多躁者必無沈毅之識, 多畏者必無踔越之見, 多欲者必無慷慨之節, 多言者必無質實之心, 多勇者必無文學之雅)." 어느 한 부분이 지나치면 갖춰야 할 것이 사라진다. 급한 성질이 침착함을 앗아가고, 두려움은 과단성을 빼앗아버린다. 다변은 마음을 허황하게 만든다. 힘만 믿고 날뛰면 사람이 천박해진다.


"지나치게 부귀하면 교만해져서 도리에 어긋나기가 쉽다. 너무 가난하거나 천하면 움츠러들기 쉽다. 환난을 지나치게 겪으면 두려워하기가 쉽다. 사람을 너무 많이 상대하면 수단을 부리기가 쉽다. 사귀는 벗이 너무 많으면 들떠서 경박해지기가 쉽다. 말이 너무 많으면 실수하기가 쉽다.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으면 감개하기가 쉽다(多富貴則易驕淫, 多貧賤則易局促, 多患難則易恐懼, 多酬應則易機械, 多交遊則易浮泛, 多言語則易差失, 多讀書則易感慨)."


많아 좋을 것이 없다. 지나친 부귀는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고, 견디기 힘든 빈천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환난도 지나치면 사람을 망가뜨린다. 종일 이 일 저 일로 번다하고, 날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 일 만들고 떠들어대면 사람이 붕 떠서 껍데기만 남는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꼭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무턱대고 읽는 책은 읽지 않느니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