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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의 니하오 차이나] 시진핑의 무역전쟁 무기 '콩'

바람아님 2019. 5. 30. 04:44
디지털타임스 2019.05.29. 18:11
박영서 논설위원

콩은 주(周)나라와 춘추(春秋)시대에 불리던 노래의 가사를 모아 엮은 '시경'(詩經)에 처음 나온다. '숙'(菽)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숙'의 고투리가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인 '두'(豆)와 비슷해 나중에 대두(大豆)로 불리게 됐다. 콩의 발상지는 만주지역 및 한반도 북부로 추정된다. BC 7세기에 저술된 것으로 보여지는 관자(管子)에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만주에서 콩을 가져와 중원에 보급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만주 지역에선 콩 농사가 흔하다.


중국이 '콩의 고향'인 만큼, 만주를 위시해 거의 전국에서 콩이 재배됐고 생산량도 엄청났다. 1930년대 중국은 국제 콩 시장의 90%를 차지했던 국가였다. 그러나 지금 중국은 최대 '콩 수입국'이다. 국제시장에서 거래되는 콩의 80%가 중국으로 간다. 중국이 최대 콩 수입국이 된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국내 수요 증가다. 고기, 우유, 달걀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사료로 쓰이는 콩 소비량이 급증했다. 콩은 돼지 사료로 주로 사용된다. 전 세계 돼지들의 절반 가량이 중국에서 사육되고 있다. 가금산업도 콩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들어 양식어류 사료에도 콩을 무더기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둘째는 예전만큼 콩 농사를 안 짓기 때문이다. 1959년부터 61년까지 3년 동안 중국은 심각한 자연재해를 겪었다. 이는 대약진운동의 실패와 겹쳐 최소 2000만명 정도가 먹을 것이 부족해 사망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곡물 자급자족 정책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중국 정부는 보조금을 지원해 쌀, 옥수수 등 다양한 곡물 증산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대신 콩 생산은 소홀히 했다. 그 결과 콩 농사는 크게 위축됐다.


중국이 콩을 대대적으로 수입하면서 미국과 남미의 농업구조까지 크게 변했다. 미국의 콩 경작지는 밀 경작지를 웃돌고 있다. 브라질에선 콩 경작지가 다른 모든 곡물 경작지 합계를 앞지르고, 아르헨티나의 경우 2배를 넘는다. 이들 3개국이 전 세계 콩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이런 콩이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의 중요한 '무기'가 됐다. 중국은 지난해 4월 미국산 콩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수입량을 대폭 줄이고 있다. 지난해말 기준 미국산 콩 수입량은 1660만톤으로 전년대비 49% 감소했다. 수출 감소에 따르는 공급 과잉을 우려해 국제 콩 가격도 급속히 떨어지는 추세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표밭인 중서부 농민층의 이탈을 노린 중국의 전략이다. 미국의 콩 수출 중 60% 이상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중국으로 수출되는 미국산 농산품 가운데 3분의 2는 콩이다. 따라서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미국 농업계는 당연히 불만이다. 미국대두협회는 "트럼프 행정부는 추가 관세를 연기하고 무역협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궁여지책으로 160억달러 규모의 농가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언제까지 농민들이 보조금으로 손해를 메우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콩은 정치 문제로 직결되는 곡물이 됐다. 콩은 트럼프의 정치생명 줄을 잡고 있다. 중국에도 양날의 칼이다. 미국산 콩을 대체하기가 쉬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메주 쑤는 데 쓰는 콩, 이 콩이 미·중 관계를 '죽 쑤게' 만드는 정치적 곡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박영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