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만물상] '장물아비' 이토 히로부미

바람아님 2015. 2. 17. 10:16

(출처-조선일보 2015.02.17 김태익 논설위원)


예부터 내려오는 심한 욕 가운데 '굴총(掘塚)을 할 놈'이란 말이 있다. 무덤을 파헤칠 만큼 못된 놈이란 뜻이다. 

유교 사상이 강했던 조선 시대에 조상을 모신 무덤은 신성한 경배 대상이었다. 

그랬던 무덤들이 벌집을 쑤신 듯했던 때가 있었다. 

1905년 무렵 고려 왕릉과 귀족들 무덤이 많은 개성·강화·해주에서 특히 그랬다. 

무덤 안에 있는 고려청자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이 '굴총 광풍' 꼭대기에 일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다.


▶이토는 스물두 번 조선에 왔다. 그는 파벌이나 축재(蓄財)에는 큰 관심 없었다고 한다. 

대신 공명심이 많았고 사치했다. 여색(女色)을 밝혔고 골동을 탐했다. 

이토가 을사늑약 후 초대 조선 통감으로 왔을 때 그를 사로잡은 것이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이었다. 

고려자기는 임진왜란 때도 왜군의 주요 약탈 대상이었다. 

이토가 맨 먼저 한 것 중 하나가 고려청자를 도쿄의 일왕께 바치고 귀족들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만물상 일러스트

▶"얼마든지라도 좋으니 고려자기를 가져와라. 몽땅 사겠다." 이토는 틈나면 충무로 일인(日人) 골동상에 나타나 큰소리쳤다. 

그의 측근이 남긴 증언이다. 어떤 때는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전부" 하며 무더기로 사기도 했다. 

훔친 물건을 통감이 앞장서서 사주니 도굴꾼들은 마음 놓고 무덤을 파헤쳤다. 당시만 해도 고려청자의 가치를 아는 

조선인은 별로 없었다. 아니, 고려 왕릉을 파헤쳐 본 일이 없으니 고려청자를 본 사람 자체가 드물었을 것이다.


▶어느 날 이토가 고종 황제에게 고려청자를 보여주었더니 고종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이 도자기는 어느 나라 거요?" 이토가 "이 나라 고려 시대 것입니다" 하자 고종은 말했다. 

"이런 물건은 이 나라에는 없는 거요." 

맨손으로 조선에 온 일인 건달들에게 고려 고분은 밑천 안 들이고 한몫 챙길 수 있는 노다지 광산이었다.


▶일본 총리를 네 번 지낸 이토 히로부미가 고려청자 최대 장물아비였음을 보여주는 문헌이 최근 공개됐다. 

김상엽 문화재청 감정위원이 집대성한 '한국 근대 미술시장사 자료집'에서다. 

작년 일본 시민단체가 1965년 한·일 회담 관련 문서 공개를 요구한 일이 있다. 

일본 외무성이 공개를 거부한 문서 중 하나가 '이토 히로부미 수집 고려 도자기 목록'이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문서에는) 한국이 납득하기 어려운 (문화재 반출) 경위가 쓰여 있다"고 했다. 

올해로 을사늑약 11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50년. 두 나라 사이에는 아직도 밝히고 드러내야 할 사연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