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현대미술 이야기 no.6 - 콘스탄틴 브란쿠시(Constantin Brancusi)

바람아님 2015. 11. 17. 00:45

[J플러스] 입력 2015.04.27 



사물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형상의 단순화
현대미술에 있어 브란쿠시(1876.2.21-1957.3.16)의 조각은 회화의 피카소에 비견될 만큼 독자적인 지위를 갖는다. 파리로 이주한 루마니아 태생의 브란쿠시는 당시 조각계의 거장이었던 로댕의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브란쿠시의 재능을 인정한 로댕이 조수직을 제안했으나 “거목 밑에서는 어떠한 나무도 제대로 자랄 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브란쿠시의 작품은 아프리카와 같은 민속적인 지역적 특성이 모더니즘의 방식으로 해석된 것으로, 핵심 이외의 세부묘사는 과감하게 생략한 단순한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브란쿠시는 전통적으로 이어오던 조각의 방식이 겉으로 보이는 효과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형상의 근본적인 모습은 가려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브란쿠시의 작업방식 또한 혁신적인 것이었다. 당시에는 조각가가 석고상이나 점토로 만들고 조각은 직업적으로 일하는 석수장이가 완성작을 조각하는 일이 흔하게 있었다. 그러나 브란쿠시는 조각가의 손이 재료(나무, 돌 등)가 이끄는 대로 따르는 것이 진정한 창조라고 믿었기 때문에 1907년부터 돌에 직접 조각을 새기기 시작했다.


"창조는 신과같이, 명령은 왕과 같이, 작업은 노예같이!“



브란쿠시, <입맞춤>, 1923, 석조고각, 36.5*25.5*24cm, 조르주 퐁피두센터.


오귀스트 로댕, <입맞춤>, 1880-1898


브란쿠시의 ‘입맞춤’ 이라는 주제는 ‘두상’, ‘새’, ‘기둥’과 함께 그가 오랜시간 시리즈로 반복해서 작품을 만든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그는 1907년 처음으로 <입맞춤>이란 작품을 시작하여 20년 동안 연작을 하였다. 이 작품의 주제와 동일한 로댕의 <입맞춤>을 비교해보면 브란쿠시의 작품이 얼마나 진보적인 것이지 알 수 있다. 브란쿠시의 작품은 로댕의 <입맞춤>에 비교하면 너무나 단순한 외형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로댕의 화려한 외관의 작품에 비해 ‘입맞춤’ 이라는 주제가 더욱 부각 된다. 부란쿠시의 <입맞춤>은 직사각형의 돌덩어리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표현으로 몸을 밀착하고 입맞춤하는 남녀의 형상을 포착해냈다. 또한 단순한 외형 때문에 한 덩어리로 묵직하게 다가오는 견고한 돌의 질감과 무게 또한 고스란히 느껴진다.

브란쿠시, <잠자는 뮤즈>, 1910, 브론즈 , 16.1*27.7*19.3cm, 시카고미술대학.


<잠자는 뮤즈>또한 브란쿠시가 동일한 제목으로 많은 연작을 만든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 ‘뮤즈’는 마치 처음부터 몸이 없었던 것처럼 몸에서 떨어져 나온 흔적 없이 말끔한 계란형 형태의 ‘독립적인 두상’ 이다. 바닥에 한쪽 얼굴을 대고 비스듬하게 자리한 뮤즈의 두상은 어딘지 동양적이고 종교적인 느낌이 들게 하며, 간결한 외형 때문에 브론즈 자체의 묵직한 무게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뮤즈의 얼굴은 얼굴이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이고 최소화된 작업으로 완성되어있다. 감은 듯 희미하게 처리된 눈, 반듯한 코와 작은 입의 뮤즈는 매끈한 브론즈의 광택과 어우러져 신비한 아우라를 자아낸다. 브란쿠시는 “사물의 진실이란 외형이 아닌 사물의 정수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잠자는 뮤즈>는 사물의 본질에 다가갈수록 필연적으로 단순함에 이르는 브란쿠시 작업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브란쿠시는 <잠자는 뮤즈>연작을 거치면서 마침내 형체를 완전히 제거한 난형(卵形)에 이르는 추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또 다른 그림
과연 미술이란 무엇이고 무엇을 미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브란쿠시의 작품 <공간 속의 새>는 이러한 질문을 법정에 까지 끌고 간 작품이다.

브란쿠시, <공간속의 새>,1927년, 청동조각, 워싱턴 국립미술관


<공간속의 새>는 대상의 본질과 이상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브란쿠시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새가 비상하는 모습을 매끄러운 청동으로 형상화한, 추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다. 미국의 사진작가 에드워드 스타이건은 프랑스에서 이 작품을 구입하여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세관에 ‘미술작품’ 으로 신고했다. 미국은 창작품에 대한 수입관세를 면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관직원은 이 작품을 ‘미술’로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주방기구와 병원용품’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유는 작품이 작품의 제목인 ‘새’와 외관상 전혀 닮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늘날에는 먹다 남긴 사과도 미술품이 되는 세상이지만 20세기 초 당시만 해도 미술에 대한 사회적 잣대가 그리 관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스타이컨은 세금으로 600달러를 지불해야만 작품을 들여올 수 가 있었고, 후에 모더니스트들의 도움으로 다시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이로써 브란쿠시의 ‘새’는 작품으로 인정된 것이다. 재현이라는 미술의 오랜 전통에서 모더니즘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전정은 사진 전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