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6.01.23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역 광장에 버티고 서 있었다. 일본 땅에서 만난 한국 장승은 고향 사람처럼 반갑다. 시골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고마신사의 입구가 보인다. 일제 강점기 참배를 강요당했던 우리 민족의 한을 떠올리면 신사는 결코 기분 좋은 곳이 아니다. 그러나 ‘고(高)’와 ‘려(麗)’ 사이에 작은 글씨로 ‘구(句)’를 새겨 넣어 ‘고구려’의 흔적을 남긴 신사 현판은 한반도와 일본의 과거를 새삼 되돌아보게 했다.
나당(羅唐) 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2년 전인 666년 일본에 외교사절로 파견됐던 약광(若光). 그는 패망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고구려 유민 1799명과 함께 척박한 땅을 개척했다. 고대 역사서인 『속일본기(續日本紀)』는 고구려 왕족인 약광이 703년 야마토(大和) 조정으로부터 ‘고려왕(高麗王)’ 성씨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716년 일본 조정은 도호쿠(東北) 지방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인들을 지금의 고마신사 일대 무사시노(武?野)로 이주시킨 뒤 고마군(郡)을 창설했다. 약광은 초대 군장(郡長)으로 임명돼 고구려 문화를 이어가며 변방을 부흥시켰다. 주민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당이 고마신사다. 후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50)가 현재 60대 궁사(宮司·신사 책임자)를 맡고 있다.
고마군이 올해 건군(建郡) 1300주년을 맞았다. 재일교포와 일본 주민, 한·일 양국의 학자 등 217명이 주축이 된 ‘고마약광회’와 동북아역사재단, 히다카시가 각종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고구려 의상 제작 교실’과 ‘고구려 유적 강좌’는 수시로 마을회관에서 열린다. 4월 말엔 ‘1300년 기념비’ 제막식도 개최된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사촌 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高円宮憲仁·사망)의 미망인 히사코(久子) 여사도 왕실 대표로 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고마약광회 명예 고문인 라종일 전 주일대사는 “1300년의 인연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일 공동의 축제를 통해 양국은 물론 일본 교포사회가 화합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하정용 사무국장도 “두 나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한 시기가 더 많았다”며 “한·일 우호의 새 시대를 기대한다”고 했다.
악화일로를 걷던 양국 관계는 조금씩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올해 고구려 마을에서 만나 ‘새로운 한·일 1300년’을 기약하며 튼튼한 주춧돌 하나 놓는 건 어떨까.
이정헌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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