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2016.05.08. 19:04
‘낙화유수(落花流水)’라는 말의 슬픔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나는 최근에서야 새로 알게 된 게 너무나 많다. 매해 돌아오는 계절마다 놀란다. 분명히 알고 있었던 단어의 새로운 뜻, 사물의 진짜 모습, 계절의 흐름과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와 개의 다양한 표정들, 처음 본 새의 울음소리, 길가에 난 풀의 신비로운 잎맥, 작년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겨울을 보내며 도르르 말린 모양, 가로수의 조경 시기랄지 호수에 착지하는 물오리의 발등 모양. 이외에도 너무나 많은 것을 나는 매해 새롭게 알게 되고 느끼고 있다. 내가 지금껏 살지 않았다면 미처 몰랐을 세상의 모습을 접할 때마다 어린나이에 요절한 천재 시인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이곳에는 분명히 쓸모를 생각하고 만들어냈겠지만 사용하기엔 너무나 아깝게 예쁜 것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서는 상상도 못할 것들이 탄생하고 또 사라질 것이다. 그들 중에는 우연한 경로로 나에게 왔다가 애정을 다한 후 버려지거나, 혹은 관심을 잃고 버려질 기회조차 얻지 못해 어느 구석에 방치된 채 먼지만 쌓이며 빛바래가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꽃이 흐르는 물에 떨어져 흘러가버리듯. 한동안 나의 애정과 마음을 담고 내 곁에 있었을 것들. 하지만 밀려오는 새로운 인연들에 의해 잊혔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떠오르게 되면, 그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되어 나에게 온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태어나 세상에서 처음 본 것처럼 대한다. 그전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 오월은 어쩐지 그래도 되는 달인 것 같다.
가지 가득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들이 지고 있다. 진 꽃은 흐르는 물에 떨어져 나는 알지 못하는 곳으로 흘러가고. 떨어지는 꽃이 흘러가는 물가에 앉아 낡아가는 신록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오월을 시작하며 맞이한 긴 연휴와 각종 기념일 챙기는 일에 지쳐 있을 피곤한 마음 가장자리에. 오늘도 새롭게 낡아가는 것들이 낙화유수처럼 ‘나를 잊지 말아요’라며 흘러가고 있다.
유형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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