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글로벌 포커스] '한국은 미들파워'라는 고정관념 벗어던져야

바람아님 2016. 5. 11. 07:19

(출처-조선일보 2016.05.11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은 강국의 추종자 역할만 하는 미들파워라는 사고의 함정에 빠져
강대국에 한반도 문제 위임하고 책임 방기하지 않는지 자성할 때
냉전 구도 해체 이룩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 개발해 나가야

박철희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겸 국제대학원 교수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의미 있는 조언을 들었다. 
존 햄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장한국이 스스로 리더가 아닌 미들파워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새로운 미래의 설계자가 되려면 한국이 동아시아의 리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지역 리더가 아닌 강국의 추종자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 아쉬웠다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미들파워라는 사고의 함정에 빠져 있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것을 걱정하던 과거의 약소국 한국은 
거듭된 위기를 넘어서고 경제성장을 계속해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미들파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성공에 도취해 미들파워의 굴레에 자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볼 때다.

한국 경제는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저성장 문턱에 섰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조선, 철강, 석유화학, 전자 등이 세계 경제 불황의 영향으로 침체에 빠지면서 한국 경제의 앞날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재도약을 시도하는 일본과 한국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샌드위치가 됐다는 
진단이 나온지 오래다. 하지만 미래의 먹거리를 염두에 두고 유연하고 발 빠른 정책적 대응을 해왔는지는 의문이다. 
행여나 우리 마음속에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살 만한 여유가 생겼으니 성장 혜택을 잘 나누어 먹는 게 더 중요하다고 
안주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한국은 어느 동아시아 국가보다도 잘 교육되고 명민하며 국제화한 인재들이 있고,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IT와 의료 기술, 
유통 혁신망 등 여전히 성장 잠재력을 안고 있다. 미들파워에 자족하려는 안이함에서 벗어나 선진국이 되겠다는 꿈을 
다시 일구어야 한다. 나아가 경제 규모에서만 선진국이 아니라 의료, 복지, 문화, 교육 등 다방면에서 
'생활 선진국'이 될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외교·안보에서도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풀 수 없으니 주변 강대국에 해결을 맡기고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중진국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미 관계 개선 없는 한반도 평화 없다는 주장이나, 
중국이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으니 중국을 활용하자는 주장도 납득할 만한 부분이 있지만 
우리가 미들파워 정도의 힘밖에 없으니 강대국에 한반도 문제를 위임하고 책임에서 벗어나자는 발상은 아닌지 
자성해 봐야 한다. 
광폭한 북한에 제재와 압박을 가해 잘못된 행동에 벌을 주자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반도 문제의 출구 전략이 되긴 어렵다. 
무엇보다 북한 문제를 우리 문제로 인식해야 하고, 한국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갈 대담하고 유연한 발상을 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관여도 압박도 한국이 주도할 때 효과를 발휘했다. 
냉전 후 한국이 지속적으로 추구한 전략 목표인 한반도의 현상 변경, 즉 냉전 구도 해체를 이룩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개발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본연의 목적을 외면한 채 현상 유지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짚어볼 때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자기최면에 빠진 것은 아닌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

한국은 지금 경제와 외교 양면에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미들파워라는 인식에 사로잡혀 자족하기에는 우리가 직면한 도전이 만만치 않다. 
우리가 중진국이라 힘이 모자라고 가진 자산이 한정적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동아시아의 미들파워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중추적 국가(pivotal power)로 도약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허리춤을 다잡고 
기운을 모을 때다. 끊임없는 혁신과 개혁, 그리고 도전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우리는 중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중추국 도약의 시동을 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