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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승리의 역사 뒤편에 존재하는 남자

바람아님 2016. 7. 30. 23:33
[중앙일보] 입력 2016.07.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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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소설가


시간 뒤편에 수납돼 있던 기억이 살아나 심장을 치는 순간이 있다. 며칠 전 동년배 남성이 식사 도중 1970년대 후반의 경험을 화제에 올렸다. 대학 재학 중 반정부 활동 혐의로 영장 없이 체포되고 끌려가 안대와 재갈을 물린 채 두드려 맞았다. 온몸에 피떡이 져 입고 있던 속옷이 벗겨지지 않았다. 순간 내 마음에서도 고통이 경험되며 80년 봄 교정에 주둔했던 탱크 부대가 떠올랐다. 35년이나 지난 일인데 그토록 생생하다니. 식사 후 시간 뒤편으로 기억을 접어 넣었는데 또다시 마음 흔드는 문장을 만났다.

“당시 재판받은 충청 지역 학생은 모두 33명, 그중 공주사대 출신은 7명이었다. 재판정에는 어머니가 둘째 동생과 함께 와 있었다. 동생이 내게 다가오려다 헌병에게 잡혀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큰아들은 오랏줄에 묶여 재판을 받고 둘째 아들은 잡혀 나가니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그날 이후 어머니는 심장이 뛰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병을 얻으셨다.” 출판평론가 한기호의 책 『나는 어머니와 산다』의 내용이다. 위 서술 앞에는 함께 운동했던 대학 후배의 자살이, 뒤에는 함께 수감됐던 동기의 간암 사망이 기록돼 있다. 두 사람 모두 현직 교사였다. 글을 읽으면 그들의 죽음이 수감 경험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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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사회는 승리의 역사와 승리자만 기록한다. 승리 뒤편에 존재하는 희생자, 최종 승리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패배들, 역사 속 개인의 절망이나 좌절은 지워진다. “사회적 기록은 앞뒤가 잘 맞아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중요해서, 꼭 필요한 경우에도 모든 제도는 그들이 생각할 수 없는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개인의 입을 막는다.” 프랑스 정신의학자 보리스 시륄니크의 말이다. 치욕의 역사나 가족의 폭력이 공모자의 침묵 속에 묻힌 후 다시 당사자를 공격하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다.

개인적으로 가끔 궁금했다. 왜 그들은 말하지 않을까. 80년대를 통과하며 특별한 삶의 궤적을 그려온 선후배, 동기, 지인이 많이 있다. 그들은 후일담을 경멸하듯, 혹은 두려워하듯 그 기억들을 억누른 채 살아간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당사자의 삶을 공격하는 게 보이는데도, 좌절을 말한다고 해서 그들의 승리가 훼손되는 게 아닐 텐데도. 한기호의 책을 읽는 도중 가끔 눈물이 났다. “생사의 자리가 이리도 간결한 것을 무던히 애쓰면서 살아온” 그 삶들에 공감해서만은 아니었다. 흠집 없이 빛나기를 바라는 역사 뒤편에 엄연히 존재하는 개인의 고통에 대해 들려주기 때문이었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