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6.08.11. 09:59
더위가 꺾이면 가을. 등을 가까이 한다는 등화가친의 계절입니다.
오늘 우리의 조명 문화는 천정을 기점으로 해서 인간의 머리를 내리누르는 수직적인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이에 비해 등잔이나 촛대는 인간의 눈높이에서 수평적이고 소박한 빛을 속삭이듯 전해줍니다.인간의 문명은 불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부엌에서의 불이 인간의 육체적 진화를 이끈 동인이었다면 밤을 밝힌 불은 어둠 속에서 인간을 끌어내 문명을 향해 걸어가게 했습니다.무차별적이고 위압적이어서 한밤의 수면마저 밀어내는 현대의 조명과 달리 전통 등잔은 밤을 밀어붙이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어둠을 잘라냅니다. 별빛을 가리지 않는 빛, 내밀하고 부드러운 등잔불은 정리할 것, 생각할 것이 많은 가을밤에 운치를 더합니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그저 불을 켜두기만 해도 마음까지 환해질 것 같습니다.
날씨도 폭력이 됩니다. 요즘 날씨는 더위라고 하지 않고 폭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더위의 폭력은 사실 이미 절정을 지났습니다. 지난 7일이 입추였습니다. 덥든, 춥든 시간은 자기만의 속도로 흘러갑니다. 그러고 보니 숨을 헐떡거리게 하는 더위 속에서 한 줄기 가을바람이 슬쩍 스치는 듯해 잠시 뒤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깜박이던 호롱불, 연탄과 친구 사이인 백열전구, 쌀쌀맞은 형광등을 거쳐 이제 바늘 끝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새침한 LED 빛이 밤을 통째로 밀어냅니다. 밤이 밤 같지 않은 시대여서 그런지 가끔 밤이 밤다웠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책 읽던 선비 곁에서, 바느질하던 여인 곁에서 조용히 수줍은 빛을 내어주던 우리의 전통 등잔은 밤다웠던 밤과 함께 오래전 우리 곁에서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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