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국정 對面 보고 안 받으면 頂上會談에서 밀려
끔찍한 대형 참사(慘事)도 거슬러 올라가면 단순 결함이나 부주의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도 그런 케이스다. 발사 73초 만에 산산조각 난 것은 추진(推進)로켓 결함 때문이 아니었다. 연료통 마개를 둘러싼 고무 패킹이 추운 날씨로 딱딱하게 굳어 부서져 생긴 사고였다. 복잡한 사고의 간단한 원인을 짚어낸 사람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이었다. 대통령 탄핵 사태에도 비슷한 이치가 얼마간은 적용된다.
누구나 한두 번 돌부리를 걷어차 고꾸라진 경험이 있다. 그러나 네 번 다섯 번 같은 돌부리에 차여 나뒹군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실패 경험을 나라 전체가 공유(共有)해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면 선진국이다. 조직 내부에서나마 실패를 학습·연구해 미래의 실패를 예방하는 나라는 중진국이다.후진국은 실패라면 무조건 쉬쉬한다.
관계자 입을 봉(封)하려고 '국가 기밀 누설'·'국기(國紀) 위반'이란 단어가 출동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세무 사찰·전화와 E-메일 도청을 서슴지 않고, 청와대·국정원·검찰·경찰 내 패거리가 작당(作黨)해 지라시를 제작·유포해 비판자를 공격한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부시 대통령 행적(行績)은 사건 발생 몇 달이 안 돼 분(分) 초(秒) 단위로 공개됐다. 그 후론 가타부타 대통령 행적이 도마에 오른 적이 없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 동선(動線)은 여전히 공란(空欄) 투성이다. 나라 얼굴에 먹칠하는 쑥덕공론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작은 창문(窓門)을 통해서도 한 나라 윤곽을 더듬을 수 있다.
지루해도 잠깐 따라가 보자,
'9시 30분 당(黨)본부. 31분 총재실. 34분 간부회의.
10시 8분 총리 집무실. 9분 지방분권(分權)회의. 17분 원자력재해(災害)대책회의. 29분 국무회의. 53분 국회의원 면담.
11시 22분 정부-여당 정책간담회.'
오후에도 이어진다. '0시 30분 제국호텔 내외정세조사회 강연,
1시 30분 총리 집무실. 52분 총재특별보좌역.
2시 13분 총리보좌관. 49분 신문 인터뷰.
3시 10분 외무차관. 40분 외무차관보·아프리카국장. 45분 외무차관보·미주(美洲)국장.
4시 30분 북한 납치(拉致) 문제 대책본부장.
5시 9분 내각정보조사실 정보관.17분 경제재생(再生)장관·과학기술부장관. 26분 전(前) 과학기술부장관.
6시 3분 일자리 개혁(改革) 회의.
7시 22분 요리점(料理店) 교토, 요미우리 논설주간·아사히·마이니치 편집위원·일본TV 해설위원장·NHK 해설 부(副)위원장과 식사.
9시 57분 자택(自宅) 귀가.'
짐작이 갔겠지만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2월 20일 소화한 일정(日程)이다. 총리실 발표 내용에 언론이 확인한 부분이 더해졌다. 누구나 신문 4면 '총리 동정(動靜)'을 통해 총리가 어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며 보냈는지 알 수 있다. 국정 어디에 역점(力點)을 두고 있는가도 드러난다. 독일과 터키에서 터진 테러 때문에 외무부 관련 보고가 많았다. 장관이 아니라 국장에게 직접 대면(對面) 보고를 받는다. 총리를 면담한 사람은 실명(實名)을 밝힌다. 제아무리 '최순실 선생'이라 해도 이 촘촘한 일정을 비집고 들어가 장관·차관·수석비서관을 맘 내키는 대로 꽂긴 어렵다. '문고리'들도 함부로 날뛰진 못한다.
일본 총리는 무쇠가 아니면 견디기 힘든 격무(激務)다. 고단하다 해서 집무실에 늦게 나갈 수 없다. 그러다간 '총리 건강 이상(異常) 징후'라는 기사가 난다. 총리 입으로 '경제 위기'라 했으면 하루 몇 차례 경제장관들과 면담이 잡힌다. 한국의 경제 부총리처럼 '근자에 대통령을 직접 뵙지 못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국가안보보좌관 긴급 보고가 자전거로 배달되는 진풍경도 논외(論外)다. 총리가 고된 일정을 밀고 나가는데 11시 30분에 점심 먹고 꿀잠 자는 공무원 풍속은 꿈같은 이야기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 주(週) 또는 두 주에 한 번 대통령 얼굴 구경했다니 더 보탤 말이 없다. 이런 한·일(韓日)이 정상회담을 하면 어느 쪽이 밀리겠는가.
한국은 AI 사태로 2000만 마리 넘는 닭·오리를 살(殺) 처분했다. 일본은 102만 마리였다. 일본은 AI 확진 판정이 나오자 한밤중인데도 총리실 비상대책반 가동, 각 부처 긴급 명령 하달(下達), AI 경보 최고 등급 상향, 자위대 방역(防疫) 작업 투입 등을 12시간 만에 완료했다. 한국은 단계마다 일본보다 수십 배 꾸물댔다. 구덩이로 떠밀리던 닭과 오리 눈빛을 떠올려보라. 대통령 일정만 투명해져도 늦장 대응의 9할은 피할 수 있다.
다음 대통령에 가장 가깝게 접근했다는 문재인씨의 만능(萬能) 열쇠는 친일·독재 유산 대청소다. 큰 문(門)은 큰 열쇠로 열린다는 주장이다. 작은 구멍에 큰 열쇠 집어넣겠다고 끙끙대며 온 나라를 뒤집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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