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양선희의 ‘삼국지로 본 사람 경영’- 자기를 망치는 기술(1) 독설가 예형(禰衡)과 공융(孔融)

바람아님 2017. 8. 7. 14:27

(중앙매거진 2017.05.23 양선희 중앙일보 논설위원·『여류(余流) 삼국지』 저자)

 

자타가 ‘이만하면 성공했다’고 인정할 만한 성공을 거두는 신하는 10명 중 한 명 정도나 나올까? 

대부분은 평범하게 자신의 일을 하면서 가족들 부양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조직생활을 한다. 

그리고 10명 중 한두 명 정도는 크게 실패한다. 

성공하는 신하와 자기를 망치는 신하들은 모두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다. 

개성이란 좋게 쓰면 좋고, 삐끗하면 자신을 망칠 수 있다. 



『삼국지』에서 예형은 독설가· 궤변가라고 하면 

그를 꼽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삼국지』에는 기이하게 잠깐 나타났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 바로 예형(禰衡)이다. 그는 출사한 지 1년 만에 분노한 조조에서 

유표로, 다시 황조에게로 갔다가 죽임을 당한다.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의 절친한 친구 공융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의 

독설과 궤변에 분노하고 화를 낸다. 그는 역사에 짧게 왔다 갔지만, 

독설가·궤변가라고 하면 그를 꼽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예형은 당대의 천재로 꼽혔던 공융(孔融)이 조조에게 천거한 사람이다. 

당시 조조는 원소와 싸움을 앞두고 양진영 모두에 거리를 두고 중립을 지키는

형주의 유표를 설득하기 위해 사자로 보낼 사람을 물색하였는데, 

이때 공융이 나서 ‘황제를 보필할 만한 인물’이라며 예형을 천거한 것이다. 

공융은 예형을 천거하는 표에 다음과 같이 쓴다.


“예형은 자질이 맑고 곧으며, 타고난 재주 또한 남달라서 어려 처음 글을 

익히자마자 곧 그 깊은 뜻을 깨우쳤고, 눈앞에 한번 스친 것을 입으로 외우고,

귀로 한번 들은 것을 마음에 잊지 않으며, 성품과 도(道)가 합치되고 생각은 

신에 가깝고, 성실하고 정직하며, 지조가 곧아 착한 일을 들으면 기뻐하고 

악을 보면 미워하고, 절개가 남다른 절세의 위인이라. 재주로 말하자면 

사리에 밝고, 변설에 능하며, 지모가 심원하고, 일을 과감히 결단하니 가히 

국난을 진정시키기에 족할 인물입니다.”



조조에게 독설을 퍼부은 예형


조조가 자신을 망신주자 옷을 훌렁 벗어버리며 좌중을 놀라게 한 예형. 

 

이에 조조는 사람을 보내 예형을 불러온다. 그런데 조조는 그를 한 번 보더니 자리에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고 세워둔다. 

이에 예형이 말한다.


“천지가 광활하나 사람은 없도다.”


조조가 말한다.


“내 수하엔 당대의 영웅이라 할 인물만 수십 명이다. 어찌 사람이 없는가?”


이에 예형은 조조 밑에 있는 수하들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순욱은 남의 집 문상이나 다니면 제격이고, 순유는 무덤이나 지키고, 정욱은 관문이나 여닫고, 곽가는 글이나 읊조리면 

딱 맞을 위인입니다. 또한 장요는 북이나 치고, 허저는 마소나 먹이고, 악진은 조칙이나 읽고, 이전은 격문이나 띄우고, 

여건은 칼이나 갈고 쇠나 두드려 창검을 만들라 하고, 만총은 술이나 거르며 지게미나 마시면 딱 알맞을 것이오. 

우금은 등짐으로 흙을 날라 담이나 쌓고, 서황은 개돼지나 잡는 백정노릇을 시키면 제격일 것이오. 하후돈은 덩치만 크고, 

조인은 돈을 긁어모으는 데 이골이 났고, 나머지들이야 모두 허우대만 멀쩡한 옷걸이 아니면 밥통일 뿐, 들어 말할 게 

있겠소이까?”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천문지리를 환하게 꿰고, 삼교구류(三敎九流, 유·불·선 3교와 유가·도가·음양가·법가·명가·묵가·종횡가·잡가·농가의 

아홉 갈래 사상)에 대해 모르는 게 없소이다. 위로는 임금을 요·순 임금처럼 만들고 아랫사람들은 공자와 안연 같은 덕을 

갖추게 할 수 있으니, 어찌 세간의 속된 무리와 더불어 논할 수 있겠소이까?”


조조는 그의 독설에 마음이 언짢았지만 그는 어쨌든 장안에 이름난 기재다. 

이에 조조는 그를 망신주기 위해 아침조회나 잔치에 북을 치는 자리를 내준다. 

예형은 이에 앙심을 품고, 다음날 조회 때 옷을 갈아입지 않고 북을 치다가 이를 지적하자 그 자리에서 옷을 훌렁 벗어버린다.

좌중은 모두 놀라고 조조도 당황하여 꾸짖는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탁한 장소에서 나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청백한 몸을 드러내 깨끗함이 무엇인지를 보였을 뿐이오이다.”


조조가 화를 내며 무엇이 탁하냐고 묻자 이렇게 말한다.


“탁함의 근원은 바로 너다. 네가 어진 이와 우둔한 자를 분간하지 못하니 눈이 탁하고, 시서를 읽지 않았으니 입이 탁하고, 

옳은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귀가 탁하고, 고금 역사에 정통하지 못하니 네 몸이 탁하고, 제후를 용납하지 못하니 이는 

네 배가 탁하고, 불철주야 찬역의 염에 불타니 마음이 탁한 탓이라. 나로 말하면 천하의 명사이고, 시류에 능하며, 

동서고금의 이치를 깨고 있는 재사 중의 재사이거늘 네가 나를 북이나 치게 하니, 이것이 무례하지 않으냐. 

사람을 이렇게 우습게 아니 네가 어찌 천하를 얻으려는 배포를 가진 자라 할 수 있느냐.”


이는 시쳇말로 ‘자뻑 대마왕’ 정도가 아니라 병적인 정도의 자아도취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예형이 조조에게 출사하기 싫어서 그렇게 막말을 했다고도 한다.


결국 조조는 그를 유표에게 보낸다. 유표도 재사로 유명한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눈다. 

그런데 유표의 덕을 칭찬한다는 것이 모두 은근히 비꼬며 욕을 하는 것이니 참을 수가 없다.

유표는 그를 강하에 있는 황조에게 보낸다. 

황조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하는 말마다 상대를 깔아뭉개고 욕하는 것이니 분개해 죽여 버린다. 

그는 머리가 떨어져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욕을 했다고 한다.



어설픈 정의감에 불타는 예형의 후예들


남의 시시콜콜한 약점들을 끌어내 비판하고, 막말을 퍼부으면서 어설픈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예형의 후예’들은 요즘도 많다.

남의 약점을 공격하고 독설을 퍼붓는 것을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부류들이다. 

예형은 그런 사람들의 큰 형님뻘일 것이다.


물론 그의 말에는 일견 진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속에 구린내 나는 것을 품고 살기에 구린내가 날 수밖에 없다. 

그가 “네 창자 속에 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이를 몰라서 이런 걸 끌어내 

세상에 진열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이런 게 세상에 돌아다니면 세상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 것만 아니면 남의 구린 것을 보고 그 사람을 조롱하고 욕하는 것을 즐긴다. 

그러니 이런 것만 끌어내 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이라는 허명(虛名)을 쌓는다. 

원래 진실을 얘기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와 기술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이렇게 거칠게 대놓고 끌어내 욕을 하니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겠는가.


예형은 죽었을 때 가슴 속에 세상을 경륜할 계책서를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지모도 채택되지 못하면 쓸모없는 것이다. 

지모를 타고난 자가 세상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써보고자 한다면 먼저 말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예형이 ‘인격장애’를 앓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옳은데 세상이 다 틀려먹었다’는 생각은 정상적인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 아니다. 

예형 같은 천하 기재도 ‘세상이 다 틀렸다’고 외치다 불과 스물다섯 살에 죽임을 당했다.


공융은 공자의 20세손으로 어려서부터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다. 

집안 좋고, 명석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성격도 곧으니 한마디로 국가대표 ‘엄친아’였다. 

그는 북해태수로 있을 때, 황건적 관해가 쳐들어오자 태사자를 유비에게 보내 구원을 요청하고, 이후 유비가 서주를 얻는 데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조조를 비판하는 체제 내 야당 노릇을 하다 죽임을 당한다.


공융은 조조의 조직 내에서 직언과 쓴 소리, 비판을 많이 했고, 조조가 하는 일에 주로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가 주군에게 좋은 신하였다는 사례는 별로 없다. 다만 그는 조직 내 평론가 혹은 비평가 같은 인물이었다. 

조직에는 반드시 이런 비평가 같은 사람들이 있다. 

아는 것은 많은데, 자신이 아는 것을 실무보다는 말로 풀어내는 데 정력을 낭비한다. 

이런 비평가들은 틀린 말을 하는 것은 아닌데 이로써 일하는 다른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자기 스스로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높으나 다른 사람들에게 불만을 사고, 조직에서도 중용되기 어려운 타입이다.


물론 먹물깨나 먹은 선비들 중 상당수는 불평과 비판을 일삼고, 현실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이런 현실적 실력 부족을 쓴 소리와 비판으로 포장하여, 자신이 중용되지 못하는 것은 실력부족이 아니라 

군주가 자신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믿게 하려는 경향도 있다.


이런 선비들이 넘치는 판국이니 비판과 쓴 소리를 했다 하여 주군들이 곧바로 죽이는 것은 아니다. 

주군들은 이런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 밑에 수두룩하게 두고 있기 때문에 일단 이런 인물들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포기할 줄도 안다. 

말 많은 신하를 죽일 때에는 주군의 가슴 속에 그만큼의 증오가 있거나 자신이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관철하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양의 본보기로 삼아야 할 때이다.


공융(오른쪽)은 조조를 비판하는 체제 내 야당 노릇을 하다 죽임을 당한다



‘미스터 쓴 소리’ 천하기재 공융(孔融)


공융은 공자의 20세손으로 국가대표 ‘엄친아’였다. 

 

공융은 정황상 전자와 후자의 경우를 아울렀지만, 실질적으로는 주군에게 

넌덜머리가 날 정도의 증오와 혐오감을 심어줌으로써 명을 재촉한 혐의가 짙다.

그는 어떤 ‘기술’로 자기를 위기로 몰고 갔을까.


첫째, 공융은 남의 일에 너무 많이 나섰다. 

한 예로 조조가 황실 백관들의 대표이며 원술의 친척인 태위 양표를 제거하기 

위해 술수를 꾸밀 때였다. 겉으로는 조조임이 드러나지 않게 일을 꾸미는데도 

공융은 조조에게 달려가 “양공이 황제를 모심에 있어 청렴하고 덕이 높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설사 원술과 내왕이 있었다 한들 그것이 무슨 죄가 된다 

하십니까?”하고 따진다. 조조가 “조정에서 하는 일인 모양”이라며 모른 척 

시치미를 떼자 “성왕(成王)이 소공(召公)을 죽였다고, 주공의 입장에서 

모르는 일이라 발뺌할 수 있겠소이까?”하며 반박한다.


조조가 양표를 제거하려 한 데는 자칫하면 자신이 곤경에 빠질 수 있다는 방어적

이유가 있었다. 물론 옳지 않은 일이었지만 

원래 주군들은 이기적이어서 자기가 우선이다. 이런 일을 이렇게 대놓고 

비판하고 말리니 양표의 목숨은 구했지만 자신의 목숨은 점점 위기로 몰고 

가는 것이었다.


둘째, 사람을 천거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 

그는 예형 같은 인물을 천거함으로써 사람 볼 줄 모르는 허황된 안목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게다가 무능한 게 아니라 주군을 모욕했으니 연좌제에 

걸릴만한 빌미를 제공했다.


셋째, 주군이 사활을 걸고 하는 일에 늘 반대하면서도 그 이유는 고리타분하고 창의성이 없었다. 

예를 들어 원소를 칠 것인지를 논의하는데, 공융은 “원소는 땅이 넓고 백성들도 안정돼 있고, 수하에 지략가와 용맹한 

장군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순욱은 그들이 모두 쓸모없는 인물들이라며 근거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넷째, 주군의 도덕적인 부분을 공격했다. 

조조가 형주로 유비와 유표를 정벌하러 떠나려는 순간 공융은 조조에게 들어가 간한다.


“유비와 유표는 모두 한실 종친인데 함부로 치면 아니 되며, 손권은 범처럼 여섯 군에 웅거하여 지역을 평안하고 윤택하게 

다스리며 백성들은 안전합니다. 또 큰 강을 끼고 있어 형세가 험난하니 공격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마당에 승상께서 

대의명분도 없는 군사를 일으키시면 천하의 인망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대책 없는 쓴 소리로 화를 자초하다


그러나 이미 준비를 끝낸 조조는 화를 내며 그를 물린다. 일이 이쯤 되었으면, 신하가 해야 할 도리는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궁리하거나 전쟁이 불리하다면 말릴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도저히 주군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면 공손히 인사하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런데 공융은 거꾸로 간다. 그리고 나가면서 혼잣말이랍시고 한다.


“진짜 도적이 지극히 어진 이를 치니 어찌 패하지 않을꼬…….”


세상의 모든 조직엔 벽에도 귀가 있어서 혼자 한 말이라도 비밀이 지켜질 거라 생각해선 안 된다. 

이 말을 빌미로 결국은 그를 옭아 넣을 모략들이 짜이고, 결국 과거 예형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빌미로 ‘효’를 왜곡했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처형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모두 정황적 이유에 불과하다. 

그를 진짜 위태롭게 만든 것은 공융이 자신의 주군인 조조를 ‘진짜 도적’으로 생각하며 혐오했다는 점이다. 

그는 천하기재였으나 주군을 위해 제대로 된 꾀를 내지 않았고, 늘 반대만 한다. 

이는 그가 지략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군을 미워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은 순식간에 상대방에게 전이된다. 조조도 이를 알아차렸고, 그러므로 그가 하는 모든 말이 미웠고, 

다만 그의 명성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있다가 빌미를 잡자 죽여 버린 것이다.


주군을 사랑하는 신하의 경우 주군에게 쓴 소리를 하고 반대를 해도 주군은 그를 살려둘 가능성이 더 높다. 

더욱이 조조는 많은 부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원상과 원희를 잡으러 멀리 오환정벌을 하고나서 반대했던 신하들에게 

상을 내리며, “언제든 기탄없이 반대하라”고 주문했던 군주였다. 쓴 소리를 할 때는 진정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야 

하며, 대책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조직 내에서 대책 없는 쓴 소리는 그야말로 헛소리나 다름없는 말이다.


어쨌든 공융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옳은 말’이었다기보다는 그가 가진 조조에 대한 혐오감이었다고 생각한다. 

주군을 참을 수 없이 혐오한다면, 자신을 파괴하기 전에 떠나는 것이 나았다. 

공융은 자신이 증오하는 주군을 모시는 일이 얼마나 신하를 위험에 빠뜨리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예형(禰衡, 173~198)


자: 정평(正平)

소속: 후한 말

출신: 청주 평원군 반현(靑州 平原郡般縣) 

출사: 공융의 천거로 출사했으나 조조에게서 북치는 자리를 받았다가 이후 유표(劉表)에게 사자로 갔다, 

다시 유표의 심복인 황조(黃祖)에게 보내진다. 

사망: 황조를 능멸하다 처형당한다. 당시 25세.



공융(孔融, 153~208)


자: 문거(文擧) 

소속: 후한, 조조

출신: 예주 노국 곡부현(豫州 魯國曲阜縣) 출신으로 공자의 20세손의 명문가 자손으로 문필에도 능하여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저서로 『공북해집(孔北海集) 총10권』이 있다.

출사: 헌제 때 북해의 상으로 임명받아 학교를 세우고 유교를 가르치기도 했고, 이후 조정으로 출사. 

명망이 높았으나 치적은 별로 없음 

사망: 조조의 형주 정벌에 분개해 조조를 비판하다 처형당하고 가족도 몰살당함


양선희 -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매주 칼럼 ‘양선희의 시시각각’을 연재하는 중이다. 

2011년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이래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품집으로 『여류(余流)삼국지』(메디치 미디어), 『카페 만우절』(나남), 『5월의 파리를 사랑해』(문예중앙) 등이 있다.




양선희의 ‘삼국지로 본 사람 경영’- 자기를 망치는 기술(2) 

참견꾼 양수(楊脩)와 조조의 친구 허유(許攸)  (중앙시사매거진 2017.06.23)

http://jmagazine.joins.com/forbes/view/317181



양선희의 ‘삼국지로 본 사람 경영’- 자기를 망치는 기술 (3) 마지막회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를 남긴 마속은 역사에서도 대표적인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남은 인물이다. 

양의(楊儀)는 자신의 공로보다 보상이 적다고 불평하다 목숨까지 잃은 사례다.





조조·유비도 언론플레이 했다?  <『여류(余流)삼국지』 서평>


(이데일리 2013.06.05 김인구기자)

  

조조·유비도 언론플레이 했다?- 여류 삼국지 1~5

- 양선희|각권 520여쪽|메디치미디어


[이데일리 김인구 기자] 최고의 스테디셀러 ‘삼국지’를 과연 어디까지 읽어봤는지. 

소설가 이문열의 ‘삼국지’, 황석영의 ‘삼국지’, 일본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그것도 아니면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나 ‘한 권으로 읽는 삼국지’, 또 ‘드라마 삼국지’나 

‘게임 삼국지’ 같은 것이라도.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1368년쯤에 중국의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서 비롯하고 

있다. 역사서인 ‘정사 삼국지’가 나오고 나서 약 1000년 후의 일이다. 

이 정사에 구전과 허구가 섞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사랑받는 현재의 역사·영웅소설이 

탄생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삼국지’는 중국의 모종강본을 근간으로 한 정역류였다. 

좀 차별화했다고 해도 일본판을 재번역하거나 국내 작가들이 상상력을 곁들여 첨삭한 것이 전부였다. 

그만큼 시·공간적 배경이나 용어가 낯설었고 특히나 남성 중심이었다.  


하지만 책은 제목에서 보듯 기존의 ‘삼국지’와는 여러모로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 

앞에 ‘여류(余流)’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나만의 스타일’이란 뜻이란다.

기존 ‘삼국지’가 몸을 쓰는 전투장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책은 몸보다는 두뇌싸움에 주목했다. 

저자가 20년 넘게 일간지에서 홍일점으로 기자생활을 해온 경험을 살려 조직생활의 처세, 소통의 기술, 

조직 내 역학관계 등으로 ‘삼국지’를 환원, 재구성했다.  


현대사회에서 사용되는 단어나 개념을 적극 도입했다. 비전, 마이너리티, 언론플레이 등과 같은 단어를 과감히 사용했다. 

서술방식도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풀었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생생함을 강조했다.  


‘도원에서 천하를 꿈꾸다’부터 ‘천하가 다시 하나로’까지 총 5권으로 구성됐다. 전체 분량은 2700여쪽에 달한다. 

“권력은 건달과 깡패 기질이 승한 이가 얻는 것이지만 집권 후에도 건달로 살면 생명은 길지 못하다”(1권 24장), 

“보통이 넘는 재주를 가진 자들은 결코 자기보다 나은 상대를 용납하지 않는다”(3권 59장), 

“한번 권력을 잡은 자는 결코 그것을 놓고 살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5권 120장) 등 말에 뼈가 있다. 


저자는 “그동안 나는 사회에 진출한 알파걸 여성들에게 조직세계를 이해하려면 ‘삼국지’를 읽으라고 권하기도 했다”며 

“이 책 또한 남성뿐 아니라 여성 후배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