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45] 분 냄새 넘실댈 듯, 한껏 달뜬 女心이여

바람아님 2013. 11. 11. 16:44

(출처-조선일보 2013.02.27  손철주 미술평론가)


내간(內間) 풍경을 좀 훔쳐보련다. 여인이 거울 앞에서 머리를 다듬는다. 보암보암이 어엿한 집안의 규수는 아닐 테다. 꾸민 티가 색스럽고 하는 짓이 들떠 있다. 치마가 강동해서가 아니라, 무릎 한쪽을 올리는 바람에 속곳이 살짝 드러났다. 는실난실하게 구는 꼴이 으레 저렇다. 신분은 기생으로 봐야 옳다. 무슨 좋은 일이 생기려나. 그녀 입매가 자꾸 생글거린다. 아마 오기로 약조한 임이 있을 거다. 저 경대는 또 몇 번이나 눕혔다 세웠을꼬.

'미인 화장'… 전(傳) 김홍도 그림, 종이에 담채,

24.2×26.3㎝, 18세기, 서울대박물관 소장

보는 김에 꾸밈새까지 따져보자. 요샛말로 '깔맞춤'한 코디다. 컬러를 매치시키는 감각이 여간내기가 아니란 얘기다. 가체머리에 드린 댕기, 저고리 깃과 고름, 바닥에 놓인 거울을 눈여겨보라. 한가지로 주홍색이다. 그것만도 아니다. 치마는 소맷부리에 회장(回裝)한 색과 똑같은 쪽빛이다. 또 있다. 동정에 차린 색은 하얀데, 허리에 잘록하게 맨 띠와 외씨버선이 마찬가지로 흰색이다. 마치 화보 사진을 찍는 듯 연출한 낌새가 엿보이는데, 기방(妓房)이라서 그런지 색정적인 공기가 더 유난해졌다.

이 그림, 지분 냄새가 화면 밖으로 번진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색한 곳도 더러 눈에 띈다. 기울어진 거울 받침이 잘못됐고, 속바지 사이로 나온 버선발은 비례가 틀렸다. 화가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단원(檀園)'이란 글씨는 김홍도(金弘道·1745~?)의 필력에 떨어지고 묘사력도 그의 솜씨에 모자란다. 다만 표정을 그린 붓질이 마침가락이다. 눈동자가 또랑또랑하고 앵두 빛 입술이 남정네를 호릴 만하다. 이 저녁에 기생이 부릴 수작이 눈에 선하다. 조선 후기 문인 이안중(李安中)이 본 듯이 시를 썼다. 
      '술잔 들고 낭군이 말하길/     맑은 향기에 술맛이 더 좋구려/ 
       웃음 지으며 낭군에 던진 말/ 제가 마시고 남긴 술이거든요.' 
그 그림에 그 대거리다. 다들 참 잘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