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8.12.05. 00:13
김정은 답방 지지를 성과로 주장해서야
“일본(Japan)의 J, 미국(America)의 A, 인도(India)의 I를 합한 JAI는 힌두어로 성공(success)을 뜻한다.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JAI가 평화와 번영을 함께 만들어가자.” 아베 총리가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향해 우리 세 나라가 함께 나아가자.”
JAI는 트럼프 미 행정부가 최근 아시아 정책으로 확정 발표한 ‘인도·태평양 외교전략’의 새로운 프레임이 됐다. 사실상 이번 G20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동안 동아태 외교를 주도한 건 한·미·일이었다. 정상끼리 빈번히 만났다. 지난해에는 7월 G20 회의와 9월 유엔총회에서 ‘한·미·일 3자회담’을 했다. 하지만 이후 뚝 끊겼다. 북한에 올인하고 미국과 중국 사이를 기웃거리는 사이 한국은 빠지고 그 자리에 인도가 들어갔다. 한·미·일 NSC(국가안보회의) 수장도 지난 3월 이후 만남이 끊겼다.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한 것일까. 한·미·일이란 기존 핵심 프레임에서 벗어난 ‘뉴 비전’은 과연 있는 것일까. 이렇게 하면 중국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
#머쓱: 한·미 정상회담 직전 청와대는 “약식회담, 즉 ‘풀 어사이드’가 아니라 공식 양자회담이 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백악관은 회담 뒤에도 ‘풀 어사이드’라고 발표했다. 한 방 먹인 것이다. 머쓱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격식이야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서로가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회담을 본 적이 없다.
또 하나는 내용. 두 정상은 대북제재를 강력하게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불과 얼마 전까지 유럽 등을 돌며 “대북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다닌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다.
머쓱했는지 문 대통령은 1일 기내 간담회에서 이 질문에 말을 흐렸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궤도 수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사실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제재를 완화해 북한 비핵화를 촉진해야 한다”(문 대통령,10월 15일)는 주장은 애초부터 논리도, 설득력도 부족했다. 제재완화 촉구란 비핵화를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이 선 시점, 그때 가서 자연스럽게 하면 될 일이었다. 판단할 건더기도 없는 현시점에 미래의 어설픈 가정을 전제로 완화를 거론한 것 자체가 조급했고 의미 없었다.
말 꺼낸 김에 또 하나. 청와대나 우리 대다수 언론은 외교 성과로 “김정은 연내 서울 답방에 대한 지지를 (트럼프로부터) 얻어냈다”고 한다. 희한한 일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제재 위반을 반대했지, 김정은 연내 답방을 반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김정은이 내켜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또 북·미 협상이 다시 활력을 찾게 하는 역할을 했다지만 오히려 북·미 정상회담은 1월 초에서 2월까지로 시기가 넘어갔다. 그것도 ‘말’뿐이다. 성과로 둔갑시키기엔 머쓱하다.
#사족: 1일 수행기자단과의 대통령 기내 간담회를 보고 뜨악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만 질문하라”고 했다. “짧게라도 (다른) 질문을 하겠다”고 하는 기자에게 “짧게라도 질문을 받지 않고 답하지도 않겠다”며 말을 끊었다. 경제 현안을 물으려 하자 “더 말씀 안 하셔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이 외교에 관심이 큰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과한 관심, ‘오직 외교’를 주문한 것 치곤 그 결과가 착잡하고 머쓱하니 그게 문제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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