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특사 타진 끝내 불발.. 정부 '포괄적 비핵화 합의'가 발목 잡나
한국일보 2019.04.17. 04:42
“문 대통령, 한미 정상회담서 대량살상무기 제거 공감 등 악재로”
우리 정부가 4ㆍ11 한미 정상회담 전 북측에 대북특사 파견 등 고위급 대화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북측이 회신하지 않는 바람에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16일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날 4차 남북 정상회담을 공개 제안한 것도 북측이 물밑 대화를 계속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전언이다.
정부 사정을 잘 아는 외교 소식통은 이날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에 대북특사를 파견하고 싶다는 의향을 북측에 전했으나 북측이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특사뿐 아니라 남북 물밑 접촉이 전반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결국 대통령의 공개 제안으로 대화 요구 수위를 높인 것”이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북한의 형편이 되는 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남북이 마주 앉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전 수순인 대북특사 파견을 언급하지 않은 채 남북 정상회담 추진 의사만 밝혀 배경이 뭔지 추측이 분분했는데, 실제 북측이 대화의 문을 좀처럼 열지 않기 때문이라는 해석에 힘을 실어주는 정황이다.
북한이 쉽게 대화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외교가에 파다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측에 ‘당사자’ 역할을 주문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다. 우리 정부가 북측의 부분적 비핵화 방안이나 제재 완화 요구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일 때까지 북한이 압박을 이어가리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전날 블로그를 통해 “(김 위원장의 시정연설로) 북한 일반 주민들도 현 흐름을 다 알게 돼 남한이나 미국 입장이 북한 요구에 맞게 변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김 위원장도 정상회담에 나올 수 있게 됐다”며 “올해 상반기에는 (남북 또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힘들게 되어 있다”고 내다봤다.
문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 상태, 목표에 대해 완벽하게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다”며 대량살상무기(WMD) 제거를 포함한 비핵화 개념에 공감을 표시한 것도 악재로 꼽힌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국제지역학)는 “남측이 포괄적 비핵화 합의를 설득하려 할 게 뻔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제재 완화 방안 등 북한이 구미가 당길 만한 카드가 마땅찮은 상황에 북한의 기대감을 더 줄여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문 대통령이 직접 회담을 제의한 만큼 김 위원장이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수 있다는 낙관적 관측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북미 협상 시한을 비교적 넓게 잡아 연말로 밝힌 것은 타협 의지가 충분하다는 사실의 방증”이라며 “북미 간 물밑 접촉이 진행되고 있다는 미측 언급이 사실일 경우 북측도 조만간 결단을 내려 남북 대화에 응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내다봤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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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9.04.16. 03:20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선순환,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 강화 등 한반도 평화 질서를 만드는 데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며 "앞으로도 필요한 일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노이 노 딜' 이후 우리 정부의 '중재자론'은 사실상 미·북 양쪽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미 상원은 "한국은 미·북 사이의 중재자가 아닌 미국의 동맹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고, 김정은은 "오지랖 넓은 촉진자, 중재자 행세를 그만하고 민족의 이익을 위한 당사자가 되라"고 했다. 북핵 피해자인 한국이 가해자인 북한 편을 들라는 것이다.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앞장서서 주제넘게 간섭한다'고 비아냥대는 말이다. 친한 친구 사이에도 쓰기 힘든 말이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 넓다'고 한 것은 우리 국민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의 활동이 필요할 때는 세 번 끌어안는 사회주의식 인사법으로 애정을 표현하더니 문 대통령 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먹혀들지 않자 면박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그런 모욕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도 없이 김정은 요구대로 '중재자' 표현을 빼고 '한반도 운명의 주인'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장담하더니 어제는 "북의 여건이 되는 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남북 정상회담을 하겠다"고도 했다. 대화를 위해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과 국가수반으로서 원칙을 지키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변함없는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어디에 그런 대목이 있나. 김정은은 "근본 이익과 관련한 문제에선 티끌만 한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3차 미·북 정상회담을 한 번 더 해볼 의향은 있다면서도 "하노이 회담보다 더 좋은 기회를 얻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하노이에서 제시했던 '고철화된 영변 폐기와 핵심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교환에서 물러날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미국보고 입장을 바꾸라고 한 것이다. 이게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인가. 무엇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인가.
한국은 북핵 위협의 가장 큰 피해자인 만큼 북핵 폐기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려면 막연한 '희망 사고'를 버리고 냉철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 정치적 목적을 갖고 북핵 외교 문제를 다루지 말아야 한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이 하자는 대로 끌려다니는 것은 남북 이벤트에 다음 총선, 대선 승패가 달려 있다는 강박관념 때문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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