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핫 이슈

<포럼>이 나라와 국민이 우습게 보이는가

바람아님 2019. 9. 24. 08:03
문화일보 2019.09.23. 12:20


집권세력의 눈엔 꽤나 간단하고 쉬워 보였을 것이다. 이 나라 국민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들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일이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적 기반부터 단단했다.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이 있는 데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세력과 참여연대 등의 시민사회 운동세력이 합류해 있었다. 지리멸렬(支離滅裂)한 상태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야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여기에 다시 국민의 눈을 가리는 기술과 국민을 동원하는 역량도 있었다. 탄핵 정국에서는 정의와 공정의 수호자로 자처하며 국민을 ‘촛불’로 불러냈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다른 반(反)시장 ‘운동세력’의 연합으로서 가는 길 또한 엄연히 달랐지만, 같은 세력이 같은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 덕에 선거도 쉽게 치렀다. 정의와 공정을 외치며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만 들고 있으면 됐다. 정책 문제에 대한 고민도 클 이유가 없었다. 경제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빌려 온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그럴듯한 단어 하나면 됐고, 외교는 현실이 어떻든 간에 민족과 통일 그리고 평화만 외치면 됐다.


집권 후의 국정 운영도 마찬가지, 경제와 산업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도, 평화라는 이름 아래 북한 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돼도, 또 빈부 격차와 일자리 문제가 나빠져도 대통령 지지율은 50%를 웃돌곤 했다. 이벤트 기획자가 만든 ‘퍼포먼스’와 ‘립 서비스’에 빠지는 국민을 보며, 세상에 이렇게 쉬운 일이 또 있을까 했을 것이다. 이 나라와 그 국민이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20년이 아니라 50년 이상의 장기집권도 꿈이 아니라 생각했을 것이다. 선거법 고치고 헌법 고치고, 그러면서 사회주의 냄새 물씬 풍기는 통일도 금방 할 수 있을 거라 여겼을 것이다.


조국 사태도 결국 이런 선상에서 악화하지 않았을까. 지명을 철회하면 비판세력의 기(氣)만 살려주는 것, 우스워 보이는 국민, 가 봐야 어디까지 가겠나. 진보 지식인들을 포함한 지지자들의 비호 아래 일단 임명한 후 다른 이슈로 관심을 돌리면 그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일면 오산이고 일면 파렴치하다. 국민은 그렇게 아둔하지 않다. 고단한 삶을 사느라 크게 관심을 두지 못할 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구별하지 못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위선(僞善)에 끝까지 놀아날 이유도 없다. 국민은 지금 보고 있는 위선을 잊지 않는다. 집권세력이 바라는 대로 이 이슈 자체가 가라앉는다 해도, 또 야권의 부진으로 정부 여당이 총선에서 이기고, 더 나아가 재집권을 한다고 해도 말이다. 비유하자면, 성직자들로 믿었던 집단이 도둑질을 했는데 이를 어찌 잊겠나. 무엇을 훔쳤는지는 잊을 수 있어도 그 위선의 이미지는 영원히 남는다.


국민 대다수는 이미 마음의 촛불을 켰다. 주도세력의 조직력이 약하고, 그래서 탄핵 때만큼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을 뿐, 그 불빛은 이미 진보세력과 문재인 정부의 위선을 온 세상에 알리고 있다. 무너지는 도덕적 정당성의 끝자락이라도 잡아 두고 싶으면, 또 더 심각하게 벌어질 분열 구도와 그에 따른 국민의 아픔을 걱정한다면 이 사태를 더는 끌지 말라.


두렵지 않은가, 후세의 역사가들이 이 정부와 대통령을 어떻게 기록할지. 노무현의 이름으로 노무현과 그의 정신을 죽인 무능하고 위선적인 ‘상속 정권’, 이렇게 기록하게 되면 어쩔 텐가. 지금 당장 법무부 장관 임명을 철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