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0.01 이지훈 세종대 교수)
이갈 에를리히 '요즈마 스토리'
요즈마 스토리
한국의 싸이월드는 페이스북보다 한참 전에 만들어졌고, 새롬기술은 스카이프,
판도라TV는 유튜브, 아이리버의 MP3플레이어는 애플의 아이팟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한국은 세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창업에 앞장선 나라였다.
그런데 왜 그런 혁신 기업들이 세계를 제패하지 못했을까?
이스라엘의 국가 주도 벤처펀드 요즈마의 초대 CEO 이갈 에를리히가 품은 의문이다.
요즈마는 만화영화 '뽀로로'로 유명한 오콘과 바이오 벤처기업 웰마커바이오 등에
투자하는 등 한국과도 많은 인연을 맺고 있기에 그런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에를리히는 회고록 '요즈마 스토리'에서 그 의문에 두 가지 답을 내놓는다.
첫째, '시작부터 글로벌'을 지향한 이스라엘과 달리 한국은 글로벌을 두려워하고
한국의 작은 시장 안에 머물렀다.
에를리히는 한국의 유망 기술 벤처기업들을 미운 오리 새끼에 비유했다.
세계로 나가면 아름다운 백조가 될 수 있는데, 스스로 능력을 과소평가하며 한국 안에서 미운 오리 새끼가 되었다.
둘째, 한국은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한 사람을 질책하는 계층 구조식 사회이다.
대기업 취업이 좋은 배우자를 찾는 최선의 방법이라 믿고, 직원이 대놓고 상사에게 틀렸다고 말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문화는 새로운 시도를 막는다.
이스라엘 역시 30년 전만 해도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은 요원했고, 이스라엘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저평가되는
'이스라엘 디스카운트' 현상이 있었다. 요즈마펀드는 글로벌 자금과 노하우를 끌어들이려는 고육지책이었다.
40%에 해당하는 1억달러만 정부에서 출자하고, 나머지 60%는 주로 해외 민간 자본을 유치해 자(子) 펀드 10개를 만들었다.
해외 자본 유치를 늘리기 위해 투자자가 5년 후 정부 지분을 액면가에 살 권리를 줬다.
에를리히는 "요즈마펀드는 이스라엘 기술 기업이 더 넓은 세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도구였다"며
"해외 파트너들과 맺은 네트워크가 돈보다 훨씬 소중했다"고 말했다.
요즈마가 투자한 벤처기업 중 23곳이 나스닥에 상장한 것은 그 네트워크 없이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도 이스라엘처럼 많은 정부 자금이 벤처 투자로 흘러가고 있고(이른바 '모태펀드'가 그것이다),
내년에도 1조원 가까이 새로 출연한다.
아쉬운 것은 민간 자본의 참여가 거의 없이 정부 자금만으로 구성된다는 점이고, 해외 투자자 참여도 없다는 점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작부터 글로벌을 지향하는 이스라엘 모델을 지금이라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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