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사진 속으로]이별 편지를 받았을 때

바람아님 2014. 1. 24. 12:14

소피 칼 ‘잘 지내기를 바래요’ 중 동화작가 마리 데스플레친, 2007


남자가 장문의 e메일을 보내온다. 표현은 점잖고 장황하지만 결국 핵심은 당신과만 사귈 자신이 없으니 헤어지자는 일방적 통보다. 그리고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럼 ‘잘 지낼게요’라고 답장을 보내야 하나. 억울하고 분하고 헷갈리는 마음에 여자는 다른 여성들에게 편지를 보여주고 해석을 부탁한다. 무려 107명이 보내온 답장의 내용은 각자의 경험과 감정이 덧대져 모두 제각각이다.

어느 변호사는 최소 2년의 실형 내지는 수천만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판결했고, 동화작가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어른들의 정서적 불안에 대한 동화를 만들어냈다. 결국 한 통의 이별 편지는 ‘헤어짐에 대한 여자들의 반응’을 둘러싼 연구로 번졌고, 덕분에 여자는 상처를 잊은 채 남자의 바람대로 정말 잘 지내게 되었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을 대표하는 작업으로 소개되었던 소피 칼의 ‘잘 지내기를 바래요’라는 작업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최근에는 서울 청담동 313갤러리에서 이 작품의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소피 칼은 전혀 모르는 사람을 미행하거나 자신의 침대에 낯선 사람을 머물게 하는 등 사생활과 작업의 경계를 허물어 온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소피 칼에게는 늘 관음증과 노출증의 대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곤 한다.

그렇다면 무방비 상태에서 자신의 편지가 세상에 공개된 소피 칼의 옛 애인은 억울한 마음이 없었을까. 소피 칼은 이 작업이 이별을 접한 여성의 반응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결코 옛 애인을 인신공격할 의사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지금은 서로 속 깊은 이성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하니 쿨한 관계였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별은 늘 영감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