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2. 03. 25. 03:07
낯선 창이 있다. 창밖엔 평온한 공기, 따스한 햇볕, 꽤 울창한 숲, 그리고 멀리 물과 하늘이 보인다. 혹여 보기와 달리 바깥 바람이 매섭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창문은 걸쇠까지 잠긴 채로 잘 닫혀 있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고, 나는 안락한 내부에 머물러 있다. 창가에 놓인 두 개의 화분은 나란히 같은 색 꽃을 피웠다.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화병에 꽂힌 꽃보다 오래 볼 수 있을 것 같아 푸근하다.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겠고 차 한잔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겠다. 이상하다. 분명히 낯선 창인데 나는 그 안에 있다.
김희원 작가의 ‘누군가의 창(Someone’s Window)’ 연작은 다른 사람의 공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준다. 유럽과 한국에서 촬영한 사진들은 모두 건물의 내부로부터 외부를 향한 시선의 방향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이 시선이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은 설렘과 안전감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https://news.v.daum.net/v/20220325030736478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16] 세상에 없는 창
***註. 트롱프뢰유(trompe l’oeil) 는 불어로 "눈속임"이라는 의미로 영어로는 'Trick of the eye' 에 해당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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