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26] 쌍둥이 벽시계로 하나 된 戀人들의 시간

바람아님 2014. 5. 3. 19:46

(출처-조선일보 2014.05.03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전시장 벽에 똑같은 벽시계 두 개가 나란히 걸려있다. 둘의 시침과 분침, 초침은 모두 일치한다. 
쿠바 출신으로 1980년대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미술가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1957~1996)의 작품이다.

작가는 연인이 에이즈 진단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시작하게 된 1988년 이 작품을 구상했다. 
그는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시계 두 개를 그리고 "시계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하고는, "우리는 동기화(synchronized)했다.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라고 글을 맺었다. 
실제로 추시계 두 개를 한 벽에 함께 걸어 놓으면, 두 시계는 벽을 통해 서로의 진동을 교환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두 시계의 
추가 완벽하게 일치, 즉 동기화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똑같은 시계를 동시에 작동시킨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둘 사이의 시차는 조금씩 벌어지고, 
결국 언젠가는 둘 중 하나가 먼저 멈춰버리게 될 것이다.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 무제(완벽한 연인들), 1991년, 페인트칠한 벽과 시계, 35.6×71.2×7㎝,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 무제(완벽한 연인들), 1991년, 
페인트칠한 벽과 시계, 35.6×71.2×7㎝,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곤살레스-토레스도 그와 연인 사이에 시차가 이미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둘이 결코 같은 시간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작가의 연인, 로스 레이콕은 그로부터 3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작가는 한동안 둘이 살던 집을 떠나지 않았는데, 그 집이 '로스모어가(街)'에 있었기 때문이다. 글자 그대로 '로스(Ross)가 더 많이(more)'있는데, 왜 떠나고 싶었겠는가.

5년 뒤, 작가도 세상을 떠났다. 미술관에는 여전히 '완벽한 연인들'이 있고, 미술관 측은 잠시라도 두 시계 사이에 시차가 생기지 않도록 늘 이 둘을 보살피고 있다. 그들은 정말로 영원히 동기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