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니스트2024. 9. 25. 23:21
대통령은 王도, 포도대장도 아니다
지지율 20% 尹, 무조건 협조 구할 때
과거 대통령-당 대표들 주례독대
신뢰-문제해결 위해 뭔들 못하랴
1989년 10월 21일 청와대 당정회의. 전날 미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노태우 대통령이 “방미 성과 홍보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라”며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정권 퇴진 운운하며 악수하는 사진이 신문 톱이고 자신의 미국 의회 연설은 한쪽에 밀린 것을 보니 대통령 할 생각이 없어지더라는 거다.
그러자 노재상(당시 67세) 강영훈 총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각하께서는 외국에서 밤잠 설치며 나라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데 국내가 그 꼴이어서 송구스럽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준규 민정당 대표도 울먹이며 “연말까지 당이 책임지고 5공 문제를 종결하겠다”고 다짐했다. 숙연한 마음으로 돌아온 당7역은 당 대표실에서 설렁탕 점심을 하면서 한참을 더 논의했다.여기까지가 박철언이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 쓴 풍경이다.
체코 원전 외교를 마치고 돌아온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국민의힘 지도부를 만났다. 용산 대통령실 앞 분수정원에서 만찬을 함께 한 윤 대통령이 설마 이런 ‘충성의 분수’를 기대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찬에 앞서 한동훈 대표가 요청한 대통령 독대를 대통령실은 거부했다. 신임 지도부를 격려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지만 웃기는 소리다. 마음만 있으면 따로 독대할 기회는 얼마든지 마련한다.
다른 관계자는 “오늘내일은 대통령과 체코의 시간”이라고 했다. 실제로 만찬에서 주로 말한 사람은 윤 대통령이었고 내용도 거의 원전 얘기였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은 외국에서 일하시는데… 하며 흐느끼는 사람만 없었을 뿐, 시계를 35년 전으로 돌려놓는 후진적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역사는 직진하지 않는다. “독대는 비공개가 원칙”이라며 거부한 대통령실은 독대를 제왕의 시혜처럼 생각하는 전근대적 집단 같다....한동훈을 신뢰할 수 없고, 힘을 실어 주고 싶지 않은 심정도 있을 듯하다.그러나 지금이 그리 한가한 시국인가. 대통령은 아프거나 다쳐도 주치의가 있어 걱정 없다. 국힘 의원들은 문자 한 통으로 알음알음 ‘의사 빽’을 찾을 수 있겠지만 보통 국민은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명색이 집권당인 국힘은 새 지도부 구성된 지 근 두 달간 뭘 한 게 있다고 국민 혈세로 세비 받고, 소고기 돼지고기 만찬을 대접 받으며 박수 치고 격려까지 받는단 말인가.그래서 한동훈이 고기 덜 먹는 한이 있어도 대통령 독대를 청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조선시대 왕(王)이 아니다. 포도대장처럼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외친다고 전공의가 벌벌 떨며 제 발로 돌아오지 않는다. 국정수행 긍정률이 달랑 20%(갤럽)인 대통령이면 여유만만 한동훈과 독대를 고려할 때가 아니다. 국민을 위해서라면 윤 대통령은 진작, 한동훈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독대 아니라 더한 것도 마다하지 않고 국정 운영을 위한 협조를 구해야 마땅하다.
https://v.daum.net/v/20240925232117840
[김순덕 칼럼]지금이 용산서 고기 만찬 먹고 박수 칠 시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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