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8.23 KAIST 인문사회학과 교수 전봉관)
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는 유태계 이탈리아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그는 화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였지만, 아우슈비츠에서 생환 이후 40여년 동안
그곳의 참상을 고발하는 저술 14권을 발표했다.
그의 첫 번째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1947)는 아우슈비츠 증언 문학의
최고 작품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110만명 내지 150만명이 학살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작품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1986)를 발표한
이듬해 토리노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아우슈비츠 이후 40여년을 더 살아야 했던 것은 그곳의 참상을 누군가는 증언해야 했기 때문이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것은 절대적 폭력과 전체주의 앞에서 추악해지는 인간성에 대한 지독한 환멸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박해자와 희생자를 '사악한 괴물'과 '무구한 인간'이라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다고 단언한다. 홀로코스트는 광기 어린 인종주의자 히틀러와
나치 친위대(SS)라는 박해자에 의해서만 자행된 것이 아니었고,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이
무구한 희생자도 아니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부분의 독일인은 히틀러와 나치의 반인륜적 정강 정책을 정확히 이해한 상태에서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들을 지지했다.
한때 나치의 지지율은 90%를 상회했다. 프리모 레비는 그런 독일인들이 종전 이후에 "그때는 몰랐다"고 변명하는 데 분개했다.
그는 또한 죽을 0.5L 더 배급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치의 앞잡이가 된 수용소 내의 '특권층 포로' '관리자 포로'에 절망했다.
가령 수용소 내의 유태인들로 구성된 '특수부대'(Sonderkommandos)는 동료 유태인들을 가스실로 집어넣고 시체를 처리하는
대가로 몇 달 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엄청난 특권'을 누렸다. 박해자와 희생자 사이에는 이처럼 명백하고 광범위한
'회색지대'가 존재했던 것이다. 프리모 레비는 이 '회색지대'에 면죄부를 준 상태에서 소수 사악한 박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언제든 아우슈비츠는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2014년 한국 사회에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사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행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박해자를
2014년 한국 사회에서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한 사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행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박해자를
가려내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을 둘러싼 광범위한 '회색지대'를 규명하고, 사건과 무관할 수 없는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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