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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두 번째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기다리며

바람아님 2015. 6. 24. 09:14

동아일보 2015-6-24

 

'노오란 샤쓰 입은/말없는 그 사람이/어쩐지 나는 좋아/어쩐지 맘에 들어/미남은 아니지만/씩씩한 생김생김/그이가 나는 좋아/어쩐지 맘이 쏠려/아 아 야릇한 마음/처음 느껴본 심정 /아 아 그이도 나를/좋아하고 계실까’

 

가수 한명숙이 불렀던 ‘노란 샤쓰의 사나이’다. 한명숙이 26세이던 1961년 3월 이 노래 음반을 냈다고 원로 방송인 이장춘 씨는 설명한다. 직후에는 별다른 호응이 없다가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뒤로 불티나게 팔렸다. 군사정부 치하에서 밝은 분위기를 원하는 정서가 경쾌한 이 노래와 맞아떨어졌다. 위로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아래로는 코흘리개들까지 흥얼거렸다고 한다.

 

이진 오피니언팀장

 

한명숙은 이듬해 같은 제목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중국(대만)과 태국 등에 영화가 수출돼 아시아권에서도 노래의 인기가 치솟았다. 1972년에는 일본 여가수가 음반을 내 일본에서 30만 장을 팔았다고 이 씨는 전한다. 요즘 말로 하면 케이팝(K-pop)이 40, 50년 전에 이미 아시아를 석권했던 셈이다.

 

이 노래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도 불렀다.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방문한 1983년의 일이다. 그 전해 총리가 된 그는 외교의 최우선 순위로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꼽았다. 그때까지 한일 두 나라 사이는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혀 있었다. 1980년 전두환 대통령이 유혈 집권한 데다 이듬해 일본에 안보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공공차관을 10배 이상으로 늘려 매년 20억 달러씩 5년간 달라고 한 것이다. 이 요구를 들은 일본 외무성 아시아국장은 “한국 정부 미친 것 아니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오구라 가즈오 북동아시아과장(현 일본국제교류기금 고문)이 훗날 밝힌 대목이다.

 

두 나라 장관들은 물론 밀사들까지 오가며 협상을 벌였지만 2년이 지나도록 좀체 진전이 없었다. 한국 정부 관료들조차 무리한 요구라고 판단했으나 대통령 위세에 떠밀려 협상에 나섰으니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이때 나카소네 총리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원만히 타결하라고 나섰다. 마침내 액수가 40억 달러로 합의됐다.

 

방한한 나카소네 총리는 공식 만찬장에서 틈틈이 연습한 한국어로 인사말을 했다. 이후 술자리에서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불렀다. 신군부 집권을 인정받았다고 여긴 전두환 대통령도 일본어 노래로 화답했다. 결국 두 정상은 얼싸안았다. 나카소네 총리는 회고록에서 ‘알코올이 상당히 들어가 완전히 동지나 형제 같은 기분이었다’고 돌아봤다.

 

이 극적인 관계 개선이 나카소네 총리의 서툰 한국어 노래 덕분일 리는 없다. 두 정상의 개인적인 기질과 정치적 성향이 맞았던 측면도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당시 소련과 북한의 위협에 맞서는 한미일 보수 지도층의 제휴가 근본 동력이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렇더라도 상대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바로 동지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한 요인이었음을 지나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두 지도자가 처음으로 화해와 협력의 길을 나서려 하는 것이다. 다만 두 정상이 모두 언급한 ‘미래’에 담긴 뜻은 좀 다르다. 한국이 과거를 끌어안은 미래를 강조했다면 일본은 과거 말고 미래에 방점을 찍었다. 두 정상이 잘 알듯이 앞길에는 가파른 고갯길이 여럿 놓여 있다. 나카소네 총리처럼 상대를 위한 배려와 양보의 의지가 필요한 배경이다. 그래야 두 나라 사이에 또 다른 우호의 노래가 울려 퍼질 수 있다.

 

이진 오피니언팀장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