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분수대] 슬픈 모국어

바람아님 2016. 10. 6. 23:44
중앙일보 2016.10.06. 19:02

한글은 쉽지만 한국어는 어렵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그렇다. 가령 ‘유명세를 타는 친구를 오랫만에 만났는데 핼쓱해진 모습에 놀랬다’는 문장에 오류가 몇 개인지 솔직히 알쏭달쏭했다. 정답은 4개. 국어사전은 유명세(有名稅)를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탓으로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으로 정의한다. ‘유명하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세금’의 의미일 터다. ‘오랫만에’는 ‘오랜만에’가 맞고 ‘핼쓱해진’은 ‘핼쑥해진’으로, ‘놀랬다’는 ‘놀랐다’라고 써야 한다. 고백건대(‘고백컨대’와 ‘고백하건데’가 아닌가 헷갈려 국어사전을 찾아봤다는 것도 고백한다) 며칠 전, 유명 포털사이트의 뉴스에서 ‘북한 개천전(절) 기념행사’ ‘다단계 판매원 쇠(세)뇌교육’ 등의 제목을 보고 비웃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뭐든지 빨라야 대접받는 시대이다 보니 이젠 어느 정도의 맞춤법 오류는 일정 부분 너그러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일부 언론사가 ‘기사 속 맞춤법 오류’ 시리즈까지 연재할 정도로 그 수가 많아지고 어찌 보면 일상화됐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기사 속 틀린 맞춤법 ○○개’ 등의 목록이 주르륵 뜬다. 신속성뿐 아니라 정확성이 생명인 기사마저도 ‘맞춤법 파괴자’ 대열에 들어선 것 같아 씁쓸하다. 일상 대화는 또 어떤가. 카카오톡 등에서 자주 발견되는 맞춤법 오류는 ‘장례(래)희망’ ‘일해라 절해라(이래라저래라)’ ‘베일에 쌓(싸)이다’ 등 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영어신문 기자 시절, 한국어가 세계 공용어가 돼 미국에서도 한국어 신문이 발간되는 날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미국인들이 한국어로 써 온 기사를 다듬어 주면 기분이 어떨까 궁금했는데 별로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우리가 영어·중국어 학습에 필사적인 만큼 모국어도 지속적 연마가 필요하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수필집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서 이렇게 썼다. “일본어로 소설을 쓰면서 다시 한번 일본어를 상대화하는 것, 나는 그것이 앞으로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어도 마찬가지다.


 두 밤 자면 570돌을 맞는 한글날이어서 반짝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부끄럽긴 하지만 우선 자신부터 노력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퀴즈 하나. 정답은 7일 본지 홈페이지(joongang.joins.com)에 올라갈 이 칼럼에서 찾아보시길. 다음 문장에서 뭐가 틀렸고, 어떻게 적어야 바르고 고운 우리말인지 댓글로 달아 주시면 된다. ‘왠일로 작지만 깜짝 이벤트도 마련했다나 뭐라나’.


전수진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