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목계지덕(木鷄之德)과 명의(名醫) 편작(扁鵲)

바람아님 2016. 12. 29. 23:09
중앙일보 입력 2016.12.28 13:30

병신년(丙申年)이 가고 정유년(丁酉年) 새 해가 밝아오고 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닭 ‘목계(木鷄))’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초리는 부드럽고,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줄 알고, 상대방에게 매서운 눈초리를 보이지 않더라도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목계지덕(木鷄之德)’이라 합니다.
투계(싸움닭)를 좋아하던 왕이 기성자(紀?子)라는 사람에게 용맹한 싸움닭을 구해서 최고의 투계로 조련하도록 명했습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습니다.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조련사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 교만을 떨치지 않는 한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열흘이 또 지나서 왕이 다시 묻자 조련사가 대답했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서 왕이 묻자 조련사가 말했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왕이 열흘을 기다린 후 다시 물었습니다.
그제야 조련사는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상대방이 아무리 위협하는 행동을 하면서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아 드디어 나무와 같은 목계(木鷄)가 됐습니다.
이제 어느 닭이라도 이 닭의 모습만 보아도 고개를 숙이고 부리를 감출 것입니다.”
-장자(壯者) ‘달생(達生)’편-

내면의 평정에 이르렀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목계처럼 동요 없이 모든 것을 주시하고 느낄 수 있는 천하무적의 투계(鬪鷄)가 된다는 것입니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8장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끊어짐 없이 움직이는 물의 모습으로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표현한 것이고, 그 끊어짐이 없다는 의미는 멈추지 않는 것보다 무위(無爲)의 움직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끊어지는 움직임은 매 순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만 모든 극간에 단절되어 있는 디지털 신호(0101...)와 같고, 무위의 움직임은 가만히 멈춰 있는 것 같아도 아날로그 신호처럼 모든 순간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목계지덕(木鷄之德)은 이 무위의 움직임에 도달한 것으로 투계(鬪鷄)가 가만히 서 있어도 상대방을 압도하여 고양이 앞의 쥐처럼 상대의 심신이 얼어붙게 하는 경지를 말합니다.
격동의 시대에 우리의 내면에 ‘목계지덕’과 같은 무게중심을 잡고 멈추되 멈추지 않는 무위(無僞)의 지혜를 체득하여, 삶의 여정에서 펼쳐지는 모든 공연을 그 순간 현존(現存)하여 느끼는 정유년(丁酉年)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명의 편작(扁鵲)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명의 편작이 진시황을 만났을 때 진시황이 물었습니다.
“너희는 삼 형제가 모두 의원이라고 들었는데, 그중 누가 가장 명의냐?”
편작이 대답했습니다.
“굳이 서열을 매긴다면 큰 형님, 둘째 형님 그리고 저의 순(順)입니다”
진시황이 다시 묻습니다.


“그대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천하의 명의인데 어째서 그런 순서가 되느냐?”
편작이 대답했습니다.
“큰 형님은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 전에 미리 그 사람의 허한 부분을 보(補)하여 건강하도록 합니다.”
“둘째 형님은 병의 초기에 병의 뿌리를 뽑아 큰 병으로 자라지 않도록 합니다.”
“저는 이미 중병이 들어 고통받고 있는 환자를  치료하여 명성이 났을 뿐입니다”

우리 앞에 도래하는 격동의 시기에서 우리가 편작 형제의 큰 형과 같은 안목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