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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의 왕궁]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Chateau de Versailles'

바람아님 2013. 8. 20. 12:35
"베르사유 궁전(Chateau de Versailles),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마리 앙투와네트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누군가를

기다릴것 같은 몽환적 상상을 하게되는 프랑스의 대표적 궁전중 하나다. 나는 70~80년대 산업화가 한창 결실을 맺을 즈음

업무차 유럽에서 3개월 가까이 머문적이 있는데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절 이었으므로 주말 휴일을 이용  베르사이유 궁전을

수박 겉할기식으로 구경한적이 있다.

 

당시 여행에관한 전문서적이나 가이드북이 충분치 않았으므로 무작정가서 뜻도 모르고 눈으로만 즐기는 그런 여행이 었다.

마침 매경  Citylife에 여행작가 이영근님의 훌륭한 소개와 가이드 글이 있어 오래전 나와 같이 무식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 소개 하고자 글을 옮김니다."

 

 

    "현대는 과거를 우려먹고 산다. 카페, 커피숍 직원들이 입고 있는 흰셔츠와 종아리까지 오는 가운,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

    하루에도 수 십 번 보게 되는 거울, 명품 가방과 보석들, 파티… 현대 문명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소비재들은 바로 이

    베르사유궁전에서 루이14세 시절에 만들어진 문명들이다."

 

 

 



현대 문명의 모든 것이 출발한 베르사유 궁전

 

↑ (왼쪽)전쟁의 방, (오른쪽)그랑 트리아농

 

 

 

 

우리가 서구식이라고 부르는 건축, 정원, 실내디자인, 가구, 조명, 가로등 등의 발원지는 베르사유 궁전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과 정원, 인테리어와 오브제만 제대로 파악하고 돌아와도 목격자의 안목은 자신의 기대치를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다.

문명의 오리지널이 몽땅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 요즘 1인 헤어숍이 적지 않게 있는데, 헤어드레서로 불리던 디자이너의 출현은

그때의 일이다. 당시 귀족 부인들은 유명한 헤어드레서에게 자신의 머리를 맡기기 위해 면전 굴욕도 불사했다.

예를 들어 잘 나가가는 헤어드레서가 못생긴 부인에게 대놓고 '당신은 어떻게 꾸며도 볼품없다, 그래도 해주긴 해 주겠다'고

말해도 비굴하게 웃어야만 했다. 오트 쿠튀르, 구두, 부츠, 하이힐이 생겼고 그렇게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패셔너블에게

치장한 사람들은 시크한 카페에 들어가 고가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 샴페인 파티를 열곤 했다. 지금도 카페 직원들이

즐겨 입는 검고 긴 앞치마도 그때 나온 것이다. 테이블에 흰색 보자기를 덮는 것도 그때부터 있어온 격식이다.

은쟁반에 은주전자도 마찬가지다. 내용과 함께 형식을 중요시한 정찬 또한 당시 왕실 문화의 산물이며 화장품, 향수도 그때

발명된 문명들이다. 오늘날 세계 명품 시장을 휩쓸고 있는 까르티에, 루이비통 등도 그 시초를 찾아보면 루이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베르사유를 여행한다는 것은(제대로 관찰한다면) 단순 관광이 아닌 인류학, 인문학, 미술, 건축, 패션, 요리, 정원,

문명발달사 등 문화 전반을 공부할 수 있는 품격 높은 여행이라 할 수 있다. 베르사유를 만든 루이왕가는 16세와 그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가 단두대에서 사라지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시민혁명이 왕정을 무너트린 모범 케이스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그렇게 이룩한 시민 사회는 또 다시 루이 왕가가 세운 찬란한 문명 덕에 엄청난 관광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그때 왕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행히 목숨을 건진 루이의 예술가 친구들은 재빠르게 시민 사회로 들어와 왕정 시절 보다 더 막강한 부와

명예를 대를 이어 누리며 살고 있다.

 

 

 

↑ 왕비의 마을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사

궁전이 있는 파리 남서쪽 베르사유 지방은 루이 왕가가 사냥터로 애용하던 곳이다. 루이13세는 사냥 시 머물 공간이 필요하자

이곳에 별장을 짓도록 했다. 소박한 규모의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루이14세가 왕위를 물려받자 그는 개축과 증축을 지시,

별장을 궁전 규모로 키우게 된다. 1662년 그는 먼저 대정원 건축을 명령하고 1668년에는 건축 전체를 증축, U자형 궁궐로 일차

완공한 뒤 1680년대에는 두 동의 대형 건물을 짓고 별관을 포함시켜 오늘날의 궁전 규모를 갖추게 된다. 전형적인 바로크 건축

물인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혁명 이후 왕정이 무너진 뒤에도 프랑스의 문화 유산으로 남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1783년 미국독립혁명 후의 조약, 1871년 독일제국의 선언,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조약체결이 거울의 방에서

이뤄지는 등 세계의 주목을 받은 대규모 행사들도 이곳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개최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꼭 봐야 할 곳들그랑 아빠르뜨망 Grands Appartement루이14세의 호사와 취미를 보여주는 일곱개의 방이

있는 건축물이다. '아봉당스 살롱 (Salon de L'Abondance)'은 루이14세의 콜렉션 룸이다. 그는 베르샤유를 유럽 문화의

중심으로 만들기 위한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귀한 보석, 오브제, 조각품, 그림 등을 따로 모아

대부분을 아봉당스 살롱에 전시했다. 왕은 정기적으로 이곳에 들려 콜렉션을 감상하고 다과회를 열었다고 한다. '비너스의 방

(Salon de Venus)'은 대리적으로 이뤄진 곳인데 천장 그림 <여신의 사랑>은 놓쳐서는 안 될 '르베 앙뚜완 우와스'의 걸작이다.

'디안의 방(Salon de Diane)'은 여신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방으로 루이14세의 흉상이 이곳에 있다. 루이14세는

이곳을 당구 살롱으로도 사용했다. '마르스의 방(Salon de Mars)'은 원래 왕궁 경비원들의 방이었다고 한다.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다비드'는 도메니키노가 그린 작품인데, 왕의 침실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메르쿠리우스의 방(Salon de

Mercure)'은 루이14세를 알현하기 위해 왕궁을 찾은 사람들의 대기실로 사용되던 방이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하염없이 왕의

부름을 기다리곤 했는데 루이14세가 죽었을 때도 조문객들은 이곳에 일주일 동안 안치되어 있던 그의 유해를 보기 위해 한참을

기다렸다 기도하고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아폴론의 방(Salon de Apollon)'은 왕이 외국 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던 곳이다.

천장에 그려져 있는 '태양의 전차 아폴로'는 '라 포쓰'의 작품이다. 아폴론의 방은 '군주의 방(Salon de Trone)'으로도 불린다.

 

↑ (위)그랑 아빠르뜨망, (아래)거울의 방

 

거울의 방 Galerie des Glaces

루이14세가 문화 강국 프랑스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분야가 거울이다. 당시 최고 품질의 거울 생산국은 베니스였다. 베니스 정부는 기술 유출을 엄격하게 경계했으나 루이14세는 산업스파이를 파견, 기술을 가져오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고

결국 거액의 뇌물로 기술자들을 매수, 스카우트하는데 성공했으나 베니스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기술자들이 모두 살해당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결국 거울 기술은 정상적인 수입 과정을 거쳐 프랑스에 들어왔는데, 루이14세는 한풀이라도 하듯 방

하나를 거울로 장식해 버렸다. 거울 한 개의 크기는 가로 75m, 세로 10.5m, 높이 12.30m인데, 이런 대형 거울이 무려 17개나

있다.

아빠르뜨망 드 라 렌 Appartement de la Reine

그랑 아빠르뜨망이 왕을 위한 궁전이라면 드 라 헨은 왕비를 위한 공간이다. 이곳은 루이14세가 부인 마리 떼레즈를 위해 지은

곳으로 네 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마리 떼레즈를 위한 '왕비의 방(Cahmbre de la Reine)'은 건축 당시에는 마리 떼레즈를

주제로 장식했으나 어느 시대인가 사라져버렸고 지금 볼 수 있는 장식은 루이 15세의 왕비 마리아 레친스카를 위한 장식이다.

문 위에 있는 그림 속 다섯 아이들이 바로 마리아 레친스카의 자녀들이다. '귀족의 살롱(Salon des Nobles de la Reine)'은 대기

공간으로 시작, 왕비의 화실, 접견실 등으로 사용되었다. '성스러운 방(Salon des Nobles de la Reine)'은 기도실이었는데

1837년부터 박물관으로 사용되면서 '나폴레온 대관식', '아부키르 전투' 등 그림들이 전시되기 시작했다.

전쟁의 방 Salon de la Guerre

전투 현장을 묘사한 작품들을 전시한 갤러리로 주로 프랑스가 승리한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있다.

 

↑ (위)그랑 아빠르뜨망, (아래)거울의 방

 

그랑 트리아농 Grand Trianon

보기 드문 '핑크색 대리석'으로 건축된 성이다. 루이14세가 자신의 정부인 마담 멩트농과의 밀회를 위하 건축했다고 전해진다. 나중에는 주로 왕들의 별장으로 이용되었다.

왕비의 마을 Hameau de la Reine

순전히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조성된 마을이다. 마리앙투아네트는 궁정 생활에 염증을 낼 때가 많았다고 한다. 모두 12채의

집을 지었는데, 그 중 왕비의 집, 당구장, 규방, 물방앗간, 버터 만드는 집, 고기잡이 탑 등은 왕비 전용으로 사용되었다.

파리 출발 교통편


REC-C5선을 타고 종점인 '베르사유 리브 고슈(Versailles Rive Gauche)' 역에서 하차, 걸어서 10분이면 도착. 소요 시간 약

40분, 편도 요금 3.35유로, 유레일패스 소지자 무료. 프랑스 국철 몽파르나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르사유 상티에르(Versailles

Chantiers)'역에서 하차. 베르사유 궁전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편도 요금 3.35유로.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포토파크, i22.com 참조 <스타일 나다>(지안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91호

(13.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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