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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보수 정치는 낡았다

바람아님 2017. 11. 18. 07:32

(조선일보 2017.11.18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유력 보수 정치인들 참신함 부족… 나이만 아니라 생각도 낡아 보여
대선 지고도 내 것 내 자리 고집, 차세대 이끌 젊은 리더 안 키워
40대 기수론 내세웠던 兩金처럼 자기 혁신할 젊은 리더십 아쉬워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에서 젖비린내가 난다는 핀잔을 들은 이는 40대의 김영삼·김대중·이철승이었고,

그 말을 한 이는 60대의 유진산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진산이 볼 때 '어린애들'이 자신을 제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는 건 가소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40대 기수론은 당내에서 힘을 받았고

세 '어린' 후보는 경선을 통해 김대중을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결정했다.

김대중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젊은 패기로 열성적인 유세를 펼쳤고 박정희는 95만여 표 차이로

어렵게 승리했다.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이들의 젊은 정치는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그 이후 한국 정치의 판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그 시절의 젊은 정치는 비단 신민당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 1960년 5월 16일 새벽 쿠데타군을

이끌고 한강대교를 넘었을 때 박정희의 나이는 44세였고, 쿠데타를 배후에서 준비하고 실행한 김종필과 육사 8기생의

나이는 대략 35세 전후였다. 당시 대위로 최연소였던 차지철은 27세였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이 두 사건 모두

'젖비린내 나는 어린애들'이 사고를 친 것이다.


굳이 정치인의 나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한국의 보수 정치가 낡아 보이기 때문이다.

'보수(保守)'라는 것이 기존의 질서, 전래의 것을 지키고 싶어하는 성향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애당초 보수와 낡음이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갖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요즘 보수 정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케케묵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보수 정파의 주요 지도자들 면면도 참신하지 않고 지지자들도 노령층에 몰려 있다.

더욱 심각한 건 생각도 낡아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해 촛불 집회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던 것은 일차적으로는 국정 농단 스캔들에 대한 분노 때문이겠지만,

그 배후에 깔려 있는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의 집권 세력인 보수 정치가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치적 생각과 행동의 낡음에 대한 분노가 많은 이를 거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탄핵 정국과 대선 패배라는 큰 충격을 받은 후에도 낡음을 털어내기 위한 보수 정치의 자기반성,

자기 혁신의 움직임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보수 정치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되든 내 것, 내 자리만 지키겠다고

잔뜩 웅크린 이들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다음 대선에서도 보수의 집권은 어려울 것이다.


한국 보수 정치의 이런 모습은 최근 외국에서 부는 젊은 리더십 바람과도 뚜렷이 대조된다.

오스트리아 총선을 승리로 이끈 국민당 대표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이제 서른한 살이고, 뉴질랜드 총리 재신다 아던은

서른일곱 살이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서른아홉 살이고,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나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은 모두 40대 초에 총리가 되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48세에 대통령이 되었고 공화당의 폴 라이언은 45세에 막강한 권한의 하원의장이 되었다.

이들은 '젖비린내 난다'고 핀잔 들을 나이에 국가 최고 통치자가 된 것이다.


물론 나이가 젊다고 해서 꼭 유능하고 혁신적인 리더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낡아 빠진' 상황에서라면 젊고 참신한 리더의 등장은 보수 정치의 부활을 위해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젊은 유권자가 쉽사리 다가설 수 없는 정당이라면 그 정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젊은 리더십이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구 정치에서 등장하는 젊은 리더십은 청년 시절부터 정치 활동을 하면서 검증 과정을 거쳐 형성되어 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방을 둘러봐도 주목할 만한 보수의 젊은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부 10년 동안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람을 키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보수 정치는 이회창·이명박·박근혜와 같은 특정 명망가에게 과도하게 의존했거나 그나마도 친이·친박으로 나뉘어

다투면서 차기를 이끌 리더 군(群)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지난 대선에서 적지 않은 젊은 보수 유권자들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보수의 변화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른정당으로 갔던 대다수 의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바른정당에 기대를 걸었던 젊은 보수 유권자들은 다시 좌절했을 것이다.

보수 통합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이 옛날 보수 정치로의 회귀처럼 보인다면 거기서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는 없다.

판을 뒤집겠다고 겁 없이 덤볐던 40대 기수론의 패기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