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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 명작 기행] (5) 소녀와 뱃사공의 시선 따라…무의식 속 나를 만나러 가다

바람아님 2013. 10. 17. 20:56
                    카를 구스타프 카루스의 '드레스덴 부근 엘베강 위의 곤돌라'

입체영화 제작 원리와 비슷한 3단계 중첩된 공간구조 느껴져
드레스덴 2차대전 때 90% 파괴…빛 바랜 흑백 사진처럼 향수 불러


어느 나른한 봄날 오후.삐거덕,삐거덕 곤돌라의 노 젓는 소리가 한낮의 정적을 깬다. 봄바람을 타고 온 나무의 상큼한 향내와

코 끝을 자극하는 엘베강의 물 비린내가 여행에 지친 한 나그네의 나른한 육신을 각성시킨다. 잠시 오수에 빠져들었던 길손은

눈을 뜨자마자 배 앞에 펼쳐진 그림 같은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 드레스덴이었다.

배는 어느 새 이 유서 깊은 도시에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배의 왼편으로 도시의 랜드마크인 성모성당의 돔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대성당의 두 종탑이 날카롭게 하늘을 찌르고 있다. 대성당 오른쪽에는 엘베강의 남북을 연결하는

아우구스투스교가 아치 모양으로 다리를 벌리고 있다. 성모성당의 궁륭은 피렌체의 두오모성당을 떠올리게 하고 오른쪽의

종탑은 베키오 궁전의 망루를 닮았다.

신사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그는 다름아닌 카를

구스타프 카루스 박사였다. 괴테의 절친한 친구인 그는 저명한 산부인과 의사이자 과학자,

박물학자,심리학자였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고 무의식은 인간

정신의 필수불가결한 토대를 이룬다는 그의 주장은 카를 융의 집단무의식 이론에도 큰

영향을 미칠 만큼 널리 인정받고 있었다.

그는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얼마나 그림을 좋아했는지 주말이면 의사 가운을 벗어 던지고 화가가 됐다.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는 당시 프리드리히의 낭만주의적 풍경화에 공감해 틈만 나면 야외 사생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풍경화에 대한 이론적 옹호자이기도 했다. 동시대의 독일 화가인 코르넬리우스가 "풍경화는 예술이라는 거대한 나무에

기생하는 이끼에 불과하다"고 혹평했을 때 그는 분노에 찬 반박문을 쏟아내기도 했다.

'드레스덴 부근 엘베강 위의 곤돌라'는 아마도 주말에 야외 사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카루스가 배 위에서 우연히 발견한 드레스덴의 아름다운 광경을 화폭에 담은 것처럼 보인

다. 이 그림은 서양회화에서는 보기 드문 구성으로 눈길을 끈다. 그 독특한 효과는 드레스덴

을 바라보는 3단계로 중첩된 공간적 깊이감에서 온다.
가장 안쪽의 공간은 삿대를 젓는 사공이 바라본 드레스덴의 광경이다. 그 바로 앞의 두 번째

공간은 사공과 드레스덴이 중첩된 광경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앞에 전개된 풍경이다. 맨 앞

의 세 번째 공간은 갑판 안쪽의 오각형 프레임 안에 자리한 두 사람(소녀와 사공)과 그 뒤로

보이는 드레스덴의 풍경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눈앞에 전개되는 풍경이다. 그것들은 마치 그림 속의 그림처럼 중첩된 공간구조

를 이루고 있다. 3D영화의 제작 원리를 오래 전에 예견한 듯한 구성 원리가 흥미롭다.

이 그림이 여느 풍경화와 다른 점은 지극히 명상적이라는 것이다. 이 점은 '뤼겐의 백악절벽'을 그린 낭만파 화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로부터 영향받은 것이다. 그림을 보면 풍경 속의 두 사람이 모두 관객을 외면한 채 드레스덴의 경치에 몰입해 있다.

그림을 보는 순간 두 인물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선을 쫓아가게 된다.

처음에는 소녀의 시선을 따라가는데 그러다 보면 시선의 중간에 위치한 사공과 만나게 되고 다시 사공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몰입하게 된다. 그렇게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은 자연스럽게 풍경 저편으로 빨려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저 멀리 우리 눈앞에 전개되는 드레스덴은 현실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아련한 옛 추억처럼 빛바랜 모습으로 다가온

다. 그것은 그가 말한 우리 의식의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이는 묘하게도 우리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소녀의 눈앞에 전개되는 드레스덴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드레스덴의 옛 모습이다. 오랜 세월 독일

북부의 중심도시로 번영을 구가하던 드레스덴은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세 차례에 걸친 미군과 영국군의 대대

적인 공습으로 도심의 90% 이상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드레스덴의 오랜 역사는 이날 떨어진 65만발의 소이탄과 수천㎏의

고성능 폭탄의 파열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근 들어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것은 옛 영화의 우울한 그림자를

트레이싱 페이퍼 위에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전성기 드레스덴의 화려하고 우아한 자태는 베르나르도 벨로토라는 18세기 후반 이탈리아 화가에

의해 포착됐다. 베네치아의 풍경화가 카날레토의 조카였던 그는 1747년 폴란드 왕 아우구스트 3세의 초청을 받아 드레스덴에

11년간 머물면서 도시 구석구석을 캔버스 위에 옮겼다. 그가 1750년에 그린 '왼쪽에 성모성당이 있는 드레스덴 풍경'은 바로

카루스의 '드레스덴 부근 엘베강 위의 곤돌라'에서 소녀가 바라보고 있는 전성기 드레스덴의 옛 모습이다.

카루스의 그림은 이렇게 해서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엘베강의 피렌체'로 명성이 자자했던 드레스덴의 옛 영화를 상기시켜

주는 회고화가 됐다. 빛바랜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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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약 40여회에 걸쳐 정석범<미술사학 박사>의 탁월한 혜안으로  그림 하나하나에 대한 심층분석과 그 그림의

   배경이 되는 도시를 순회하며 현재를 조명한 글을 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