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물음을 찾아 떠나는 고전 여행] 일본은 왜 독일처럼 반성하지 못할까?

바람아님 2018. 3. 6. 08:28

주신구라(忠臣藏)

주간조선[2391호] 2016.01.18
▲ ‘주신구라’ 책 표지
진솔한 반성과 사과에는 조건이 없다. 그럼에도 지난해 말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다면서 이런저런 조건을 달았다. 그런 사과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도리어 불편하게 만든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일본을 독일과 비교해 본다. 독일은 조건 없는 반성을 통해 유럽의 지도자로 거듭 태어났는데, 일본은 왜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할까.
   
   이런 의문을 제대로 풀어줄 고전이 있다. 바로 ‘주신구라(忠臣藏)’이다. ‘춘향전’이 우리의 국민극(劇)이라면 ‘주신구라’는 일본의 국민극이다. 글로벌 시대에 웬 국민극 타령이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극에는 정서적 원형질이 침전되어 있다. 외양이 바뀌더라도 원형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민극을 통해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탐색해 보는 일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서 ‘춘향전’의 내용을 따져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것이 바로 국민극의 조건이다. 그러면 ‘주신구라’는 어떤 국민극인가. 본래 구라(藏)는 ‘곳간’이란 뜻이다. 따라서 ‘주신구라’는 ‘많은 충신들이 활약한 이야기’ 정도로 이해된다. 이것은 18세기 벽두에 발생한 실제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끔찍한 유혈 복수극에 열광하는 일본인
   
   1701년 봄, 막부는 아코번의 젊은 영주 아사노(淺野)에게 천황의 칙사 접대를 맡겼다. 당연히 이런 행사에는 복잡한 의전이 수반되었다. 막부는 의전에 정통한 명문 출신 고관이 행사를 자문하도록 했다. 그때 자문역이 기라(吉良)라는 인물이었다. 결국 두 사람의 원만한 협조가 행사 성공의 관건인 셈이다. 그런데 뜻밖의 사단이 벌어졌다.
   
   음력 3월 14일 행사 마지막날. 에도성 대전(大殿)의 복도에서 아사노가 단검으로 기라를 공격했다. 기라는 이마와 등에 경미한 상처를 입은 채 구출됐다. 당시 성 내에서 칼을 뽑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사노가 칼을 빼어든 이유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막부는 곧바로 그에게 당일 할복, 가문 단절, 영지 몰수라는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젊은 영주는 그날 저녁 할복으로 34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아코번의 사무라이 300여명은 졸지에 주인과 일자리를 잃고 낭인(浪人)이 되었다. 그들의 절망과 비분강개는 충분히 짐작된다. 더구나 기라는 일방적 피해자로 여겨져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것이 그들을 더욱 자극했다. 오이시(大石)를 우두머리로 하는 낭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비참하게 살면서도 복수의 기회를 엿보았다. 물론 뜻을 같이하다가 이탈하는 자도 속출했다.
   
   이듬해(1702년) 12월 14일 오이시가 사발통문을 놓자 한밤중에 15세의 소년부터 76세의 노인까지 모두 47명의 낭인이 은밀히 모여들었다. 이튿날 새벽 그들은 기라의 저택을 급습하여 그를 살해했다. 곧바로 아사노의 묘소로 달려가 주인의 영전에 기라의 목을 바쳤다. 막부는 사건 처리를 놓고 고심하다가 이듬해 2월 전원 할복을 명했다. 그들은 주검이 되어 이미 센가쿠지(泉岳寺)에 묻혀 있던 주군 아사노와 나란히 누웠다.
   
   일반 대중은 이 끔찍한 복수극에 환호했다. 여기에는 지극히 일본적인 정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사무라이는 오로지 주군(主君)을 위해 존재한다. 심지어 주군이 죽으면 따라 죽는 순사(殉死)가 여전히 유행했다. 또한 사무라이가 명예나 체면에 도전받으면 복수하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그들에게 할복은 명예를 지키는 죽음이었다. 이 유혈 복수극은 한마디로 사무라이 가치의 종합선물세트였다. 그것은 일반 대중의 심금을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사건은 다케다 이즈모 등 세 명의 유명 작가의 손을 거쳐, 1748년 허구의 형식을 빌려 극본으로 완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가나데혼 주신구라’이다. 이 극본은 곧바로 전통극, 소설, 그림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된 ‘주신구라’ 작품군의 원류가 되었다. 더구나 메이지 정부가 사무라이 정신을 국민 도덕의 골격으로 삼으려 하자 ‘주신구라’는 일본인의 국민극으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오늘날에도 소설, 영화, 드라마,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주신구라’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일본인의 원형질이 녹아 있는 국민극
   
   우리의 ‘춘향전’은 픽션이다. 거기에는 사랑, 한(恨), 인고 등 인간의 평범한 정서가 녹아 있다. 꽉 막힌 현실은 암행어사 출두로 확 뚫린다. 여기선 신분적 질곡도 사회적 부조리도 문제되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의 굳은 의지로 고난을 극복하고 사랑을 획득한다. 그렇게 쟁취한 행복은 밝고 명랑하다.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판타지적 요소가 강하다. 우리는 이런 ‘춘향전’에 울고 웃는다.
   
   이에 반해 ‘주신구라’는 각색은 제각각이어도 뼈대는 팩트이다. 충의, 명예, 수치, 복수, 할복 등 전형적인 사무라이의 가치가 가득 담겨 있다. 그들은 치밀한 준비와 용의주도한 작전으로 뜻을 이룬다. 개인은 오로지 집단의 명예와 복수를 위해 사용될 수단의 일부일 뿐이다. 뜻을 이루고 장렬하게 죽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다. 시종일관 비장(悲壯)하다. 일본인은 이런 ‘주신구라’에 눈물을 흘리며 열광한다.
   
   그들은 집단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지 않는다. 최근에도 일본에선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부패나 부조리가 불거지면 비서들이 윗사람과 조직을 위해 자살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세계적 석학인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의 지적대로, 일본인은 집단을 위해 죽어간 사람은 많지만 진리나 정의 등 보편적 가치를 위해 죽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에게 집단의 궁극(窮極)인 국가는 무조건 선(善)이다. 그들은 일본이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반성이나 사과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수치를 할복으로라도 씻어내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연말 ‘사과’ 운운은 아베 총리가 정치적으로 할복하는 시늉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후대에 사과를 물려줄 수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의 사과는 결국 가해자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일본 탓만 하고 있는 것은 무익하다. ‘주신구라’에 열광하는 일본은 우리에게 냉혹한 현실이다. 우리는 과연 그런 현실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가. 아무래도 감성에 치우쳐 있다. 위안부 문제를 외교 테이블에 덜렁 올려 놓은 것만 해도 그렇다. 사과도 받을 태세를 갖춰야 제대로 받는다. 모든 병법의 출발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이다. ‘주신구라’와 ‘춘향전’은 주제나 성격이 달라도 국민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만 한 지피지기의 재료도 드물다.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