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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프랑스 국민들의 선택

바람아님 2018. 4. 7. 21:02

(조선일보 2018.04.07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1차 대전 참화로 뮌헨 회담 수용
"이번 마지막 양보이고 다음번엔 단호한 대처" 결단 後 행동도

지금 한반도, 80년 전 유럽 닮아
北과의 '어정쩡한 타협' 안돼… 검증 거쳐 北核 완전 폐기해야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의 프랑스 점령 시기를 다룬 장 폴 사르트르의 소설 '자유의 길'에는

뮌헨 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Edouard Daladier) 이야기가 나온다.

1939년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를 요구하자, 같은 해 9월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대표가

뮌헨에 모여 나치 독일과 협상을 벌였다.

각국 대표는 히틀러가 원하는 대로 양보하는 내용의 뮌헨 협정을 체결했다.

민주주의의 참담한 후퇴이며 결코 정의롭지 않은 행위였지만, 이 양보로 일단 전쟁을 피하려 한 것이다.


귀국길에 오른 달라디에 총리가 파리 인근 부르제 공항 근처에 왔을 때 비행기 창밖으로 공항에 수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보았다.

독일에서 자신이 행한 결정을 비난하는 집회라고 생각한 총리는 옆에 있던 외무부 장관 레제(Alexis Léger)에게 말했다.


"저들이 내 얼굴을 치겠구먼." 장관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공항에 착륙하니 국기와 꽃다발을 든 사람들이 그를 향해 뛰어오며 "프랑스 만세! 영국 만세!

평화 만세!" 하며 환호하는 게 아닌가.

인파를 바라보던 달라디에는 외무부 장관에게 말했다. "바보들(Les cons)."


국민은 히틀러에게 굴종한 뮌헨 협정이 전쟁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선 당장 전쟁을 피한 데 만족했다. 프랑스인들은 사악한 제3 제국에 맞서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길을 택했다.

달라디에는 비록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히틀러에게 양보했으나, 그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국민을 힐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즈음 프랑스 국민 생각은 어땠을까?


마침 이해에 프랑스에 여론조사국이 생겨 최초로 여론조사를 했다.

첫 번째 조사는 '뮌헨 회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는데, 이 질문에 파리 시민의 압도적 다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참혹했던 제1차 세계대전의 기억이 아직 생생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지난 전쟁에서 죽거나 불구가 되어 돌아왔는데, 이제 아들을 다시 전쟁터로 내보내야 하는 여성이 수없이 많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설사 독재자에게 양보해서라도 전쟁을 피한 데에 만족한 것이다.


이 여론조사에서 눈여겨볼 점이 하나 더 있다. 파리 시민들은 '이번이 마지막 양보이며,

다음번에 다시 비슷한 사태가 일어나면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사실이다.


얼마 안 있어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프랑스인들은 더 이상 참지 않았고,

달라디에 총리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미루어졌던 전쟁은 더 크게 폭발했다.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핵전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현재 한반도 상황이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과 닮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남북한 간 그리고 미·북 간 정상회담이 예정된 4~5월이 우리 민족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험악한 협박을 일삼던 북한 당국이 돌연 핵 포기 가능성을 내비치고,

한편으로 '자본주의 날라리풍'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방북 예술단원들을 친밀하게 응대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자체는 희망적 변화다. 이렇게 되기까지 북한 및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당국과 접촉하며 끈기 있게 논의하고

설득했을 현 정권의 노력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속으로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그동안 여러 차례 북한이 평화 공세로 위기를 넘기면서, 뒤로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평화 제스처를 보이는 북한을 지켜보는 우리 마음이 지극히 복잡한 이유다.


과연 이번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를 향한 거보(巨步)가 될 것인가?

너무나도 소중한 기회이지만, 그 때문에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다.

이 마지막 기회가 또다시 이전과 같은 '시간 벌기용 속임수'임이 밝혀지면 무력 충돌로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니 어정쩡한 타협을 할 거라면 차라리 지금 중단하는 게 낫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가지고 협박하는 상태라면 도대체 평화라는 게 불가능하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정상회담의 목표는 의당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여야 마땅하다.

국민은 매번 속아 넘어가는 '바보들'이 아니다. 우리는 눈 크게 부릅뜨고 북한의 핵 폐기를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