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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軍, '46용사'에게 고개 들겠나

바람아님 2018. 4. 7. 21:09

(조선일보 2018.04.07 전현석 정치부 기자)

전현석 정치부 기자전현석 정치부 기자


얼마 전까지 천안함에 대한 우리 군의 입장은 단호하고 한결같았다.

북한 정찰총국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따른 폭침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2일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이라고 말한 이후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다.


국방부 대변인은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 어떤 기관이 공격을 주도했다고 특정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청와대와 통일부가

"특별한 입장이 없다"고 하자 입을 맞춘 것이다. 김영철 발언에 대해 공식 항의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없었다.


얼마 전 공영방송인 KBS가 수년 동안 떠돌던 괴담(怪談) 수준의 의혹을 짜깁기해 방송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군 당국은 정정 보도 요구는 물론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분석해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KBS가 제기한 의혹은, 천안함 폭침 이후 5국 전문가 73명으로 구성된 민·군 합동 조사단이 2개월 동안 조사한

합동 조사 결과 보고서만 봐도 대부분 해명이 가능한 것이다.

명확하게 분석할 이유가 없는데도 시간만 끌더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이런 태도에 비판이 쏟아지자 군 당국은 5일 뒤늦게 해군, 조사본부 등 천안함 관련 유관 기관을 모아 대책 회의를 열었다.

천안함 폭침 논란에 대해 앞으로 정면 반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정작 나서야 할 땐 물러서더니 뒷북만 치는 꼴이다.

국방부가 돌연 태세를 바꾼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천안함 민·군 합동 조사 보고서를 신뢰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래선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국방부가 대통령 지시 없이는 멀쩡한 천안함 진실도 말하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김영철 발언과 KBS 보도에 소극 대응해 온 것 아니냐는 의심도 자초했다.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천안함 용사 46명과 유족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이라도 있었는지도 의문스럽다.


군이 권력 눈치를 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 코드에 따라 군 인사가 출렁댔다.

현 정부 들어서는 '적폐 청산' 작업으로 전 정권의 군 수뇌부가 줄줄이 법정에 서고 있다. 기무사는

"과거 청산을 하겠다"며 현충원에 가서 손을 씻는 '쇼'까지 벌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영철의 '천안함 망언'에 분노는커녕 유감 표명조차 없는 군의 현실은 개탄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장병이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키고 싶을까.

송영무 장관과 군 수뇌부는 천안함 46용사 앞에 당당하게 고개 들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