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일사일언] 고조선이 흉노와 만날 때

바람아님 2015. 2. 4. 09:11

(출처-조선일보 2015.02.04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약 2500년 전 몽골 초원에서 발흥한 흉노는 아시아 북방에 유목제국을 건설해 중국과 힘을 겨뤘다. 
그들은 중국에 패망한 이후 동유럽의 중세시대를 바꾼 훈족으로 세계사에 재등장하기까지 
약 1000년 동안 초원의 지배자로서 세계사의 한 축을 담당했다. 흉노는 자신들의 기록을 남기지 않고 
사방을 이동했던 유목민족이었던 탓에 파괴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고고학 유물을 통해 
흉노가 선진적인 문화를 영위했고 동서양의 다양한 문명과 교류했음이 속속 증명되고 있다.

초원의 지배자인 흉노와 한국 고대사와의 관계는 러시아 바이칼 호수의 동쪽에서 발견된 기원전 
1세기 흉노의 성터인 이볼가 유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흉노인 자신들은 유목민이지만 주변의 
정착민을 데려다 성을 쌓고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교역하는 거점으로 삼았다. 이볼가 성터에는 
한반도 북부지역 옥저와 고구려인들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온돌을 설치한 주거지가 일정한 크기와 
간격으로 발견됐다. 흉노는 바이칼 주변의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디기에 적합한 온돌 주거지를 
고구려나 옥저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말로 '신도시'를 건설한 셈이다.

[일사일언] 고조선이 흉노와 만날 때기록에 따르면 중국은 흉노와 고조선이 통하는 
것을 걱정했다. '한서(漢書)'에 "고조선이 
흉노의 왼팔"이라며 걱정한 대목이 있다. 
또 한나라에 이어 신(新)나라를 건국한 왕망이 
고구려인들에게 흉노를 없애라고 명령하자, 
반대로 흉노와 연합하여 역공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 청동기에서 자주 발견되는 북방 초원 
계통의 유물들도 이러한 흉노와 고조선의 
교류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과 유라시아를 이으려는 노력이 사회 
전반적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 시작은 흉노와 고조선의 만남에 있을 것이며, 바이칼 호숫가의 이볼가 성터가 이를 증명한다. 
한국 고대사를 대표하는 고조선과 유라시아 세계사를 대표하는 흉노의 만남은 우리의 역사를 
유라시아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