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5-04-30
송평인 논설위원
외교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동맹이다. 우리나라는 천 년간 동맹국을 스스로 선택해본 적이 없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한국에 외교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이유다.
삼국시대만 해도 나당(羅唐)연합이니 백왜(百倭)연합이니 하는 게 있었으나 이후로는 주로 중국과의 조공 관계가 이어졌다. 중국도 전국시대에 합종연횡(合從連衡) 같은 치열한 외교가 있었으나 진시황의 천하통일 이후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과 주변국은 오랫동안 외교를 잊고 살았다. 중국이 서양과 접촉해 아편전쟁을 당한 것은 외교를 잊은 채 조공만 고집했기 때문이다.
일본만 중화의 세계에서 떨어져 번(藩)으로 나뉘어 자기들끼리 경쟁하면서 동맹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 일본도 개국 이후 열강에 끼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 간섭에 호되게 당한 뒤, 러일전쟁에서 영일동맹으로 러시아에 보복하면서 동맹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한국엔 낯선 동맹 경험
조선은 개국 이후 일본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동맹을 경험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또 광복과 동시에 한반도 북쪽은 소련, 남쪽은 미국과의 동맹의 틀 속에 사실상 강제로 편입됐다. 그러고 나서 중국의 부상과 함께 천 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에게 동맹의 선택지(選擇肢)가 주어졌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동맹의 경험이 풍부한 나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를 미일의 ‘신(新)밀월관계’ 정도로 보는 것은 핵심을 찌르지 못한다. 신밀월관계는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로널드 레이건과 20년의 격차를 둔 고이즈미 준이치로-조지 W 부시의 관계에나 적절한 표현이다. 아베가 한 것은 미일동맹의 성격을 바꾸는 질적인 변화다.
아베의 궁극적 목표는 일본 미국 호주의 동맹에 인도를 끼워 넣는 ‘민주적 다이아몬드 동맹(democratic security diamond)’이다. 미국 하와이에서 시작해 연결하면 다이아몬드가 그려지는 네 나라가 민주주의를 공동 가치로 중국에 맞선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국(大國)이고 앞으로 더 큰 대국이 될 것이지만 주변국이 포위하면 일본이 싸워볼 만한 상대다. 전 세계를 관리하는 데 점점 더 힘이 부치는 미국으로서도 바라는 바다.
‘민주적 다이아몬드 동맹’ 구상에 한국은 들어 있지 않다. 일본의 생각은 한국이 들어와 주면 좋지만 들어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최근 들어 일본은 한국과의 가치 공유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중국과 가까워진 한국이 들어오면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투키디데스를 읽어라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국 우선순위에서 일본에 밀린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런 냉엄한 현실이 서운하지만 그렇다고 중국과의 동맹으로 함부로 기울 수도 없다. 중국은 여전히 반(反)중국 세력에 비하면 큰 차이로 열세다.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기운다고 우세를 열세로, 열세를 우세로 바꿀 수 있는 균형자도 아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보면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생존을 위한 동맹이 눈물겹다. 동맹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경쟁하는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행복한 상황이 아니다. 진정한 외교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이다. 동맹은 이기는 동맹에 서야 하고 이기는 동맹에 서기 위해 때론 억울함을 감수해야 한다. 최소한 왕따가 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외교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논설위원
[사설] 빗장 풀린 일본 자위대, 정부 대책은 충분한가
[중앙일보] 입력 2015.04.29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지구 전역(全域)에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군사일체화 단계에 진입했다. 어제의 적(敵)이 오늘의 ‘절친’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두 나라는 종전 70주년에 즈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역사적’ 방미에 맞춰 군사협력 무대를 전 세계로 확대하는 내용의 신(新)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재균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과 재무장을 통해 군사대국화하려는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중국의 경제·군사적 굴기속에 가시화한 미·일 ‘울트라 동맹’은 동아시아 질서에 일대 격랑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에는 심각한 외교·안보적 도전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의 변신을 도모해온 아베 정부는 지난해 평화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에 맞춰 미·일의 군사협력 수준과 내용을 전면적으로 확대·쇄신한 것이다. 평시부터 전시까지 다양한 상황별로 협력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양국은 지상과 해상, 공중은 물론이고 우주에서까지 ‘이음새 없는’ 협력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특히 자위대는 유사시 주일 미군을 도와 한반도와 그 주변에 파병할 수 있는 길까지 열었다. 한국의 동의와 관련한 부분은 ‘제3국의 주권을 충분히 존중한다’는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갔다. 반드시 동의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입장이 반영된 문구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100% 안심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비화할 경우 미·일 동맹이 한·미 동맹과 충돌할 가능성도 이론적으론 배제하기 어렵다. 동중국해에서 미·일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한국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지침 개정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날개를 달았다. 미·일 동맹 강화가 대북(對北) 억지력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지만 그 못지않게 우려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정부가 모든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지 의문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로의 변신을 도모해온 아베 정부는 지난해 평화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번 방위협력지침 개정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에 맞춰 미·일의 군사협력 수준과 내용을 전면적으로 확대·쇄신한 것이다. 평시부터 전시까지 다양한 상황별로 협력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양국은 지상과 해상, 공중은 물론이고 우주에서까지 ‘이음새 없는’ 협력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특히 자위대는 유사시 주일 미군을 도와 한반도와 그 주변에 파병할 수 있는 길까지 열었다. 한국의 동의와 관련한 부분은 ‘제3국의 주권을 충분히 존중한다’는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갔다. 반드시 동의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입장이 반영된 문구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지만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100% 안심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갈등이 군사적 충돌로 비화할 경우 미·일 동맹이 한·미 동맹과 충돌할 가능성도 이론적으론 배제하기 어렵다. 동중국해에서 미·일과 중국이 충돌할 경우 한국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지침 개정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날개를 달았다. 미·일 동맹 강화가 대북(對北) 억지력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지만 그 못지않게 우려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정부가 모든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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