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11.13
지금 미국과 중국이 고도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 사태는 애치슨과 덜레스와 케넌 등이 쌓아 올린 팍스 아메리카나 질서에 대한 중국의 정면 도전이다. 남중국 해역의 크기는 한반도의 12배가 넘고 인접한 국가는 대만까지 포함하여 7개국이다. 이 넓은 해역에는 250~3000개의 섬, 바위, 산호초, 모래톱, 썰물 때 나타나는 모래사장들이 즐비하다. 수심 3000m의 해저에는 석유와 가스가 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전략적 가치로는 수심이 워낙 깊어 미국 함정들이 중국의 전략 잠수함을 탐지하기가 어렵다. 이 해역이 풍부한 어장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1년에 5조 달러 이상의 상품이 통과하는 해상 수송로다. 한국과 일본이 중동 산유국에서 수입하는 석유의 90% 이상이 이 해역을 통과한다.
남중국해 분쟁의 성격은 세 개의 차원이다. 경제적(해저자원), 전략적, 항행의 자유다. 미국이 한국에 남중국해에 관해 크게 목소리를 내라고 압박하는 것은 다분히 전략적 이유에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영토분쟁에 어느 한쪽 편을 들 수도 없고 들어서도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이 현상 유지와 현상 타파를 다투는 전략 차원에도 개입할 힘도 없고 개입할 처지도 아니다. 한민구 국방장관이 지난 4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18개국 국방장관 회의에서 남중국해의 항행과 비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말한 것이 우리가 취할 행동의 상한선이다. 미국이 어떤 압력을 넣어도 그 이상은 나가서는 안 된다.
중국은 계속 인공섬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인공섬 위에 군용기가 날 수 있는 활주로를 만든다. 미국은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독점적 영유권 주장에 반대하고, 국방장관이 쿠알라룸푸르의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한 뒤 말레이시아 영토인 동부 사바주로 가서 수직 이착륙 수송기 MV-22 오스프리를 타고 남중국해에서 작전 중인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에 탑승한 것은 중국에 대한 시위 이상으로 미국 국내를 향한 퍼포먼스였다. 중국은 남중국해를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이 바다 매립으로 인공섬을 계속 만들어 나가면 미국 정부는 여론과 의회의 압력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남중국해의 파고가 높아도 미국과 중국이 우발적으로라도 물리적 충돌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너무 낙관적이다.
중국은 9단선을 그어놓고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입을 꽉 다물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동남아의 어느 나라도 9단선에 시비를 걸 수가 없다. 중국은 9단선 안의 남중국해를 장악하고는 쿠릴 열도에서 일본·오키나와·대만·북부 필리핀과 보르네오에 이르는 제1열도선까지의 해역에 대한 미 해군 함정의 진입을 차단하려고 할 것이다. 중국의 원양 방어 개념에 따른 제1열도선 방어를 미국이 좌시할 수는 없다. 중국이 9단선을 넘어 제1열도선까지 진출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중국은 아세안 국가들과 남중국해에 관한 행동규범(code of conduct)을 체결하는 데도 미온적이다. 시진핑(習近平)은 시사군도 영유권을 놓고 대립하는 베트남을 방문했다. 그렇게 남중국해는 당분간 미국과 중국 외교전의 무대가 될 것 같다. 이럴 때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으로서는 “침묵이 금”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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