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동아광장/권영민]‘Hi Seoul’에 哭하다

바람아님 2015. 11. 15. 10:34

동아일보 2015-11-14


‘I.SEOUL.U’는 무개념 난센스 브랜드
친숙한 ‘Hi Seoul’ 폐기, 前시장 흔적 지우려는 치졸한 정치 아닌지…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

한 도시의 이미지는 도시 자체가 스스로 만든다. 그 이미지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애착으로 점차 빛을 발하고, 도시를 찾아오는 손님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확산된다.


세계의 도시로 손꼽는 미국 뉴욕의 거리거리에 ‘I ♥ New York’이라는 문구가 넘쳐난다. 낯선 이방인이라도 이 문구의 평이함과 친화력에 공감한다. 그리고 거기 ‘I(나)’라는 대명사에 자신을 기꺼이 끼워 두고자 한다. 그러므로 뉴욕의 거리에서는 누구나 흥겹게 ‘I ♥ NY’를 몸 전체로 느낀다. 도시의 브랜드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이. 서울. 유(I.SEOUL.U)’라는 서울의 새로운 도시 브랜드 조형물이 광화문광장에 세워진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이런저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들이 몇 차례 해명을 했지만 제대로 납득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시민들의 호응도 크게 얻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I.SEOUL.U’라는 새로 만든 도시 브랜드라는 것이 난센스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문구를 고안해낸 사람들까지 나서서 이런저런 설명을 붙이고 그 상징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가 억지에 가깝고 그저 구차할 뿐이다. 도대체 이 거대한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몇 사람이 만들어낸, 말도 되지 않는 조작된 문구에 의해 다시 새롭게 살아날 수 있을까? 이 짧은 문구에 ‘마침표’를 두 개나 표시하는 것은 ‘이미지’ 자체의 집중이라는 효과 면에서도 전혀 엉뚱하다. 하지만 서울시에서는 기어코 이것을 밀어붙이고 있다. 왜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이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에게 익숙해진 서울의 간판은 ‘Hi Seoul’이다. 십여 년 전에 이 문구를 서울의 브랜드로 내세웠을 때도 반대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대로 잘 정착되어 왔고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하이 서울’이라는 말은 그 자체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다. 누구나 알아보기 쉬울 뿐 아니라 ‘하이 서울’에서 느끼는 친근감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거대한 현대 도시로 발전한 아름다운 서울에 처음 들어선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아!’ 하는 경이감마저 ‘하이 서울’이 대신 표현한다.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하여 처음 대하였던 ‘Your Singapore(당신의 싱가포르)’라는 문구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거기서 느낄 수 있었던 강렬한 인상과 친밀성에 견주어도 ‘Hi Seoul’은 그다지 손색이 없다. 그동안 서울시에서도 수많은 홍보물에 ‘Hi Seoul’이라는 문구를 집어넣고 서울을 선전하면서 아마 엄청난 예산을 썼으리라 생각한다. 그 결과로 ‘하이 서울’은 이제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그런데 서울시가 갑작스럽게 ‘Hi Seoul’을 폐기 처분하고 있다. 평범한 시민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이런 쓸데없는 일에 예산을 낭비하고 시민들을 짜증나게 하는지 묻고 싶다. 혹시 이 황당한 시책이 ‘정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커진다. 정파가 다른 전대(前代) 시장이 만들어 놓은 것을 모조리 지워버리기 위한 고안이라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치졸한 ‘정치’이다. 새로운 시장이 나올 때마다 서울시의 브랜드를 바꿀 것인가를 묻고 싶다. 애써 가꾼 서울의 브랜드를 시장 집무실 벽에 걸었다가 내려놓는 ‘시정지침(市政指針)’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정략적 ‘술수’ 때문에 무지한 시민들은 늘 어지럽다.

이제 다시 ‘하이 서울’ 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도, 서울은 지금 ‘안녕’하지 못하다. 십몇 년을 두고 겨우 익숙해진 ‘Hi Seoul’이라는 간판조차 까닭 없이 내팽개칠 정도이니, 서울이라는 도시가 도대체 평안할 리가 없다. ‘Hi Seoul’의 수난과 단명(短命)에 곡(哭)이라도 대신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