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북핵문제와 절제의 미학

바람아님 2016. 2. 28. 00:37
[중앙일보] 입력 2016.02.27 15:22

노자의 도덕경에 ‘치대국 약팽소선(治大國 若烹小鮮)’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부서지지 않게 굽는 것과 같아서 조심스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나라 안팎으로 다양한 이익집단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정책이 가져올 파장을 예측하기 힘들고 잘못하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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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과 광명성 4호 발사에 대해 우리는 개성공단의 가동 중단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논의라는 정책으로 응수했다.북한은 연일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중국도 남한의 미군기지를 주일미군기지와 연속선상에 놓으면서 전쟁이 발발하면 남한을 우선적으로 폭격할 것 같은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전략적 사고가 부족한 상황에서 강수의 선택에 따르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은 극심한 군비경쟁과 전쟁발발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북한이 이미 세 차례의 핵실험과 그보다 많은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해왔는데, 특별히 이번 4차 핵실험과 위성발사에 대해 정부는 초강수로 대응하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기술이 진보함으로써 미국의 위기감이 고조되었다고 하는 부분도 검증이 필요하다. 중국의 즉각적인 협조를 기대했는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미온적인 대응이 박근혜 정부의 인내의 바닥을 드러내게 했을까.사실 북핵문제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9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반도의 난제로서 어떤 영웅이 존재하거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없이는 풀리지 않는 문제다.

그럼 우리에게 이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발상이 채택될 수 있는 전략적 공간이 존재하는가. 이점에 대해서 필자는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작은 생선을 굽는' 조심스러운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발생한 상황을 다시 정리해 보자.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취한 정책이 남북관계를 김대중정부 이전으로 돌려놓고, 한·중관계를 냉전 상황으로 복귀시킨다면 한국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이명박정부 초기에 개선된 한·일관계가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천황 비하 발언으로 악화된 후 한국은 일본 관광객의 급감을 포함해 많은 손해를 입었다.박근혜 정부 초기에 정상 간의 친밀도를 강조하며 발전시킨 한·중관계를,위기를 통해 견고하게 만들기는 커녕 과거로 돌려놓는다면 한국이 겪을 손실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사드의 한반도 배치 목소리가 커지자 중국은 '한중 관계 파탄' 운운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그러나 중국을 성토하는 걸로 끝나선 안된다.이런 신경질적 반응 뒤에 있는 중국의 우려와 전략을 면밀히 연구해야 한다.국제정치와 군사전략에서 창과 방패는 둘 다 무기인데, 방패를 강화하는 전략은 창을 무력화하는 것이므로 창을 쓰려고 하는 자에게는 큰 도전일 수 있다.

2001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 Treaty)에 대한 지지를 천명함으로써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에 대해 반대해온 러시아의 주장을 한국이 지지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져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해 러시아도 중국과 함께 한목소리도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의 ABM조약에 대한 입장은 김대중정부의 반미감정의 표현이라고 보기보다는 정부 내의 공감대가 없는 상황에서 한 부서에서 밀어붙인 입장이 정상회의 합의문에 포함됨으로써 큰 논란으로 점화된 경우다.정상회담 전에 작성되는 합의문을 관련 부서가 면밀하게 검토하지 못한 실수가 낳은 소동이었다.

북한의 도발에 따른 대결이 한반도의 위기뿐만 아니라 ‘신냉전’의 도래라는 지역질서의 변화로 이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강도높은 대북 유엔제재 속에서 우리의 이익과 명분을 챙길 수 있는 유연한 전략이 시급한 때다.

손기영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인문한국교수)